“北 개성-금강산자금 쓴곳 밝히기 어렵다고 해”

  • 입력 2006년 10월 23일 0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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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열렸던 윤이상음악제 참관차 북한을 방문했던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이 2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자택에서 북한 핵문제 등에 대해 평양 당국자들과 나눈 얘기를 밝히고 있다. 김재명 기자
평양에서 열렸던 윤이상음악제 참관차 북한을 방문했던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이 2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자택에서 북한 핵문제 등에 대해 평양 당국자들과 나눈 얘기를 밝히고 있다. 김재명 기자
박재규(경남대 총장) 전 통일부 장관은 22일 “북한 당국자로부터 ‘현 상황에서는 2차 핵실험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박 전 장관은 이날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그러나 미국이 계속 압박을 가한다면 더 강하게 나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고 소개했다.

박 전 장관은 방북 중 강능수 문화상과 이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김병훈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장, 주진구 민족화해협의회 부회장 등 주요 인사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북한 고위 당국자들의 생각이 방북 인사의 입을 통해 나온 것은 처음이다.

박 전 장관은 북측이 핵실험 배경에 대해 “미국이 계속 금융제재로 압박을 하며 목을 죄는데 그냥 죽을 수는 없지 않느냐. 목이 조여서 죽기보다는 한번 해(싸워) 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 평양 분위기

―평양의 분위기는 어떠하던가.

“핵실험 후 긴장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동안 외부의 공격 위협에 대해 대비가 부족했는데 이번 핵실험을 통해 대비를 하게 된 게 ‘축하할 일’이라는 분위기다. 방북 중에 평양시내에서 야간에 횃불을 든 군중이 모였는데 ‘ㅌㄷ(타도)제국주의동맹’ 80주년 기념행사라고 했다. 또 낮에는 대동강 주변과 광장 등 곳곳에서 군사훈련을 하고 있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방북 횟수가 10차례가 넘는데 최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올해 들어 3가지가 달라졌다. 지난해까지는 평양 시내에 미국을 비난하는 플래카드 등 문구가 거의 안 보이다시피 했는데 이번에 평양에 가 보니 원색적으로 ‘타도제국주의동맹 운동을 더 전개하자’는 등의 문구가 평양 구석구석에 많이 세워졌더라. 또 선전 선동 구호가 김일성 주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이름으로 많이 바뀌었다. 세 번째로 평양 시내 전력 사정이 좋아졌다. 평양 인근 발전소의 부품을 많이 교체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로 제재가 더 심해지면 북한이 손들고 나올 가능성은….

“내가 ‘경제가 붕괴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북한 당국자는 ‘과거 어려운 때도 고난의 행군으로 잘 풀어 왔다. 그때보다 더 단단한 각오와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과의 대립이 더 심해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북한의 중국에 대한 신뢰가 많이 무너진 것 아닌가.

“7월의 미사일 발사 때도 그렇고, 이번 핵실험 이후에도 그렇고 북한은 중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해 결의안이 통과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배신감도 느꼈을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의 수위를 낮춰 준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개성공단 사업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통해 북한에 들어간 돈이 핵개발 등에 전용됐을 것이란 의혹에 대해선 뭐라고 하던가.

“북한 당국자는 ‘북남관계를 위해 썼지만 어디에 어떻게 썼다고 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도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6, 7년 전 그런(전용) 얘기를 꺼냈으면 싸우려고 했을 것이다.”

―김 위원장 후계 구도가 가시화하는 조짐은 있나.

“내가 ‘지난해에도 금년에도 후계자 얘기가 남측뿐 아니라 외국에서 흘러나오는데 방향 정한 것 있느냐’고 물었더니 북한 당국자가 ‘상부의 명령으로 아무도 거론하지 않고 있다. 공식적인 얘기가 나오기 전까지 아마 한참 동안 거론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 북한 핵실험

―핵실험에 대한 북한 자체 평가는….

“오랫동안 연구하고 준비했던 것이라 대성공을 했다고 하더라. 실패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러시아 쪽에서 더 잘 안다고 했다.”

―핵실험을 한 목적이 뭐라고 하던가.

“남측이 겁을 먹도록 하기 위해 핵실험을 한 게 아니라고 했다. 미국에 핵과 관련해 빈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 핵실험을 했다는 설명이었다.”

―굳이 국제사회가 반대하는 핵실험을 한 이유에 대해선….

“북한은 이 상황까지 오게 된 게 미국 정부가 신포 경수로 건설 지연에 대한 보상 등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6자회담에서 9·19공동성명을 채택한 직후 금융제재를 하고 인권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미국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왜 그렇게 금융제재 해제를 원하나.

“북한은 7월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최소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동결된 계좌라도 풀어 달라고 미국에 직간접적으로 요청을 했다고 한다. BDA 계좌는 상징적인 것 같다. 체면을 세워 달라는 것이다. BDA 계좌 말고도 북한이 외부와 거래하는 계좌 대부분이 막혀 매우 답답해 했다.”

―남측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정식 참여하는 문제에 대한 북한의 생각은….

“북측 당국자들은 ‘잘 생각해서 남북간 긴장이 너무 고조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번 방북을 통해 북측에 전달한 메시지가 있나.

“미국과 기 싸움을 너무 벌이지 말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라고 했다. 그래야 북한의 경제가 개선되고 세계와 공조하면서 김정일 위원장 체제가 잘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몇 차례 얘기했다. 최고위층에 내가 한 얘기를 잘 보고해 달라고 말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제언할 게 있다면….

“내가 통일부 장관 때는 대북 문제 때문에 한미관계에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미국 대사를 자주 만났다. 한미, 한일 간에 불협화음이 안 생기는 게 동북아 전체를 위해서 좋다고 정부 당국자들에게 얘기하고 싶다.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 한미관계가 좀 더 단단해지지 않으면 그동안 땀 흘려 이룩해 놓은 것도 망가질 수 있다.”

박제균 기자 phark@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박재규 前통일부 장관

△1944년 경남 마산 출생 △미국 페어레이디킨슨대 학사, 경희대 정치학 박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1973∼86년) △경남대 대학원장(1978∼86년) △한국대학총장협회장(1997∼99년) △통일부 장관(1999년 12월∼2001년 3월)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2000년 4∼6월) △현 경남대 총장 △현 윤이상 평화재단 이사장 △저서 ‘북한의 신외교와 생존전략’(1997년) ‘북한군사정책론’(1982년)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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