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싹쓸이만은 막아주세요” 집권당의 희한한 호소문

  • 입력 2006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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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숙인 與지도부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오른쪽)과 김한길 원내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당 지도부가 25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비상총회에서 “한나라당의 싹쓸이만은 막아 달라”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김경제 기자
고개숙인 與지도부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오른쪽)과 김한길 원내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당 지도부가 25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비상총회에서 “한나라당의 싹쓸이만은 막아 달라”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김경제 기자
열린우리당 의원과 주요 당직자 100여 명은 25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비상총회를 열어 ‘5·31지방선거에서 싹쓸이만은 막아 달라’는 내용의 대국민 호소문을 채택했다.

남은 선거기간에 정상적인 선거운동으로는 참패를 모면할 수 없다는 절박감에서 마련된 행사다.

열린우리당은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중 2군데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확연한 열세’를 보이는 상황이다.

총회 참석자들은 ‘싹쓸이를 막아주십시오’라고 적힌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았고, 한결같이 무거운 표정이었다. 정동영 의장은 “서울에서 제주까지 한나라당이 싹쓸이할 전망이다. ‘평화 민주 개혁’ 세력이 와해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호소를 간절히 올린다”고 했다.

열린우리당은 호소문을 통해 “전국 246개 광역 및 기초단체장 가운데 열린우리당 후보 당선 가능성이 있는 곳은 20여 곳에 불과하다. 심지어 수도권은 단체장 70명 가운데 한나라당이 67, 68석을 싹쓸이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고 주장했다.

여론조사기관들이 현재 한나라당 우세 지역을 150곳 안팎으로 분류하고 있는 데 비해 야당 강세를 더욱 강조한 것이어서 ‘엄살성’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지금까지 여당이 이처럼 일방적인 열세에 몰린 선거도 없었지만 공개적으로 선거 참패를 거론하며 도움을 호소하는 것도 전에 없던 기이한 풍경이다.

열린우리당은 집권당일 뿐 아니라 2004년 17대 총선 지역구 의석의 과반인 53.1%를 휩쓸었고, 지금도 142명의 의원을 보유한 원내 최대 정당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국회에서 사립학교법을 강행처리했고, 불과 20여 일 전인 2일에도 주민소환법 등을 강행처리하는 등 강력한 정국 주도력을 보여 준 상황이다.

그런 강자가 새삼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야당의 눈에는 퍽이나 고깝게 보였던 듯하다. 야당은 일제히 ‘진정성 없는, 열린우리당식 사기극’이라며 싸늘하게 반응했다.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은 “패배가 자명해지니까 경기하다 말고 감독이 선수들을 그라운드 밖으로 불러낸 뒤 심판에게 영패나 모면하게 해 달라고 사정하는 꼴”이라며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 열세 만회를 위해 듣도 보도 못한 코미디를 다 보여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상황은) 지난 3년 내내 분열 조장, 코드 챙기기, 반개혁으로 일관해 온 노무현 정권, 정동영 의장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자업자득”이라며 “하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열린우리당은 할리우드 액션 같은 엄살을 중단하라”고 말했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싸워보기도 전에 한나라당의 압승을 떠드는 집권당의 의장은 한나라당의 선전부장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은 “여당이 어제는 2년 전 ‘낡은 지역주의 정치세력’으로 폄훼하던 민주당을 갑자기 ‘함께 갈 민주평화세력’이라고 치켜세우더니, 오늘은 ‘선거패배선언’을 통한 한심한 구걸정치에 나섰다”고 힐난했다.

이날 열린우리당 총회에서도 일부 자아반성론이 나왔다. 조세형 고문은 “영입해 온 좋은 후보들이 당 때문에 매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또 배기선 의원은 “우리 고통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분명한 것은 국민은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보다 더한 고통을 받았다는 점”이라고 했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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