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뻣뻣한 北’ 확인한 평양 광물투자 설명회

  • 입력 2006년 5월 1일 03시 03분


코멘트
《주저하다 손을 못 들었다. 지난달 27일 오후 7시. 한국비료공업협회 김봉직(金鳳直) 전무는 질문 시점을 자꾸 놓치면서 초조해졌다. “오늘은 이걸로 끝내죠.”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측은 질문을 그만 받겠다고 했다. 그때 김 전무가 손을 번쩍 들었다. “비료를 만드는 광물은 북한 어디에 얼마나 있나요. 품질은 좋은가요.” 북한 측은 서면으로 궁금한 내용을 알려주면 자료를 개별적으로 주겠다고 했다.》

북한은 지난달 26∼28일 남한 기업인 104명을 평양으로 초청해 광물자원 공동개발과 관련한 투자설명회를 열었다.

하지만 설명회에 ‘설명’은 없었다. 남북 사이엔 깊고 넓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 “남측 투자 의지 못 믿겠다”

김 전무는 당초 북한 내 광물 샘플을 얻으려고 했다. 하지만 딱딱한 분위기에 눌려 샘플 얘긴 꺼내지도 못했다.

그는 “나중에 자료를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만도 다행”이라고 했다.

민경련은 26일 회의 때엔 “남측과 자원 개발을 하면서 실리를 얻지 못했다”며 “중국, 러시아 등 어떤 나라와도 사업을 할 수 있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회의 내내 남한 기업인과 북한 당국자의 주장은 엇갈렸다.

기업인들은 “현지 조사를 하게 해주고 광물 자료를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북한은 “먼저 사업계획서를 달라”고 요구했다. 남한의 투자 의지를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민경련은 대한광업진흥공사 박양수(朴洋洙) 사장과의 개별면담에서 “500만 원은 있어야 추진할 수 있는 사업에 10만 원만 들고 와서 사업하려는 남측 기업인이 많았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 모든일에 합의가 우선

북한에 머물며 김 전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합의’였다.

27일 흑연광산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에서 황해남도 정촌으로 향하던 중 방북단 가운데 몇 명이 “소변이 급하니 쉬어가자”고 했다.

북측 안내원은 “쉬었다 가는 건 합의되지 않은 사항”이라고 말했다.

일순간 버스 안은 웃음바다가 됐다. 그런데 버스는 계속 달렸다. 농담이 아니었던 것이다. 순간 웃음이 가셨다. 이렇게 융통성이 없어서야….

버스 앞에 가던 세단이 멈추자 버스도 섰다. 고위급 인사가 탄 검은 세단의 위력이 ‘급한 용무’보다 커 보였다.

표현도 합의에 따라야 했다. ‘남한, 북한’이란 말 대신 ‘남측, 북측’이라고 해야 했다. 길거리나 농촌을 촬영하는 것도 합의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정작 중요한 합의는 형식에 그쳤다.

광진공은 방북 마지막 날 △현장 조사 △평양사무소 개설 △자료 공개 등의 내용을 담은 합의서를 북측과 작성하려 했다.

북한은 동의하지 않았다. 합의서엔 ‘남북이 자원 개발에 협력한다’는 추상적인 말만 나열됐다.

○ 감기약 건네자 생수가 답례로

북측 안내원 박 씨는 첫날부터 감기 기운이 있었다.

텅 빈 고속도로, 저녁까지 진행되는 매스게임 연습 등 북한의 모습을 취재하지 못하도록 막는 게 이들 안내원의 임무였다.

안내원들과 방북단과의 관계는 처음엔 서먹했다. 하지만 일부 남측 인사가 박 씨에게 감기약을 전해주면서 좀 달라졌다. 박 씨는 하루 만에 거뜬해졌다.

그는 “큰딸이 북한 유명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하는데 학교 다니면서 연애도 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라며 속내를 보이기도 했다.

방북단이 공항으로 떠나기 전 박 씨는 버스에 생수 한 통을 실었다. “감사의 표시입네다”라고 했다.

김 전무는 “가슴이 찡했다”면서도 “북한이 광물자원 자료를 빨리 보내 줘야 할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평양=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