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한명숙 총리후보 당적 정리’ 복잡한 속내

  • 입력 2006년 3월 2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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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중립’ 강조… 한편으론 ‘女心’ 눈치

한명숙(韓明淑) 국무총리 후보자의 열린우리당 당적 이탈을 요구하는 한나라당의 속내가 복잡하다.

‘선거 중립 총리’라는 명분을 관철해야 하지만 ‘첫 여성 총리’에 대한 여성계 등의 기대를 감안하면 임명동의에서 마냥 반대만 하기도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이계진(李季振) 대변인은 26일 논평에서 “역대 총리와 법무부 장관이 대부분 특정 정당 소속이 아닌 중립적 인사였다”면서 한 후보자의 당적 이탈을 거듭 촉구했다. 그는 나아가 천정배(千正培) 법무부 장관의 경질까지 요구했다.

실제로 1990년 이후 실시된 12번의 전국 단위 선거에서 총리가 집권 여당의 당적을 갖고 선거를 치른 예는 거의 없다.

1998년 지방선거 당시 김종필(金鍾泌) 총리서리와 2000년 16대 총선 때 박태준(朴泰俊) 총리가 자민련 소속이었던 게 예외다. 그러나 이는 ‘대통령은 후보를 낸 민주당이, 총리는 연합세력인 자민련이’ 맡기로 한 DJP연합정권의 대선 공약에 따른 것이었다. 박 총리의 후임인 이한동(李漢東) 총리도 자민련 총재 출신이었지만 2002년 지방선거 때는 탈당한 상태였다.

한나라당은 특히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와의 청와대 만찬에서 ‘야당 맘에 쏙 드는 인물’을 임명할 것을 약속해 놓고 야당의 최소한의 요구를 묵살했다는 불만의 소리도 낸다.

이방호(李方鎬) 정책위의장은 이날 “한 후보자의 당적 이탈은 야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이를 거절한다면 우리도 총리에 대해 협조할 수 없다”며 인사청문회 및 임명동의안 표결 거부를 거듭 시사했다.

한나라당은 5·31지방선거에 대비한 전략 차원에서도 한 후보자의 당적 문제를 그냥 넘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여권이 ‘한명숙 카드’에 이어 강금실(康錦實) 전 법무부 장관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워 지방선거에서 ‘여풍(女風)’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명확한 만큼 정치적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내심이다.

여권의 ‘여성 공세’에는 최연희(崔鉛熙) 전 사무총장의 성추행 사건을 부각시키려는 전략이 깔려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나라당의 핵심 관계자는 “지방선거에서 박근혜(朴槿惠) 대표의 진두지휘 아래 ‘여성 후보 30% 이상 공천’ 등을 실천해 여심(女心)을 파고들려 했으나 ‘한명숙 카드’로 어려움이 없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한 후보자의 당적 문제를 청문회 거부로까지 몰고 가는 것은 역풍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당내에서 나온다. 당의 한 관계자는 “자칫 ‘한나라당이 첫 여성 총리에 반대해 국정의 발목을 잡는다’는 여권의 역공이 먹힐 수 있다”고 걱정했다.

당내 일각에서는 당 지도부가 당초 김병준(金秉準) 대통령정책실장보다 한 후보자의 총리 기용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듯한 태도를 보이다가 뒤늦게 당적 문제를 제기하는 바람에 정략적이라는 인상을 준 측면도 없지 않다고 비판한다.

열린우리당이 연일 “당적 이탈 요구는 책임정치, 정당정치에 비춰 과도한 요구”라고 반발하는 데다 민주노동당이 24일 ‘한나라당, 너무 좀스럽다’는 논평을 내고 한나라당을 공격한 것도 한나라당의 고민을 더하게 하는 대목이다.

1990년 이후 주요 선거 때 국무총리 및 법무부 장관
구분총리법무부 장관
지방의원선거 (기초)
1991.3.26
노재봉
(대통령비서실장)
이종남
(검찰총장)
의원선거(광역)
1991.6.20
서리 정원식
(사랑의 전화 이사장)
김기춘
(검찰총장)
제14대 총선
1992.3.24
정원식김기춘
제14대 대선
1992.12.18
현승종
(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이정우
(대법관)
제1회 지방선거
1995.6.27
이홍구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
안우만
(대법관)
제15대 총선
1996.4.11
이수성
(서울대 총장)
안우만
제15대 대선
1997.12.18
고건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김종구
(서울고검장)
제2회 지방선거
1998.6.4
※서리 김종필
(자민련 의원)
※박상천
(국민회의 의원)
제16대 총선
2000.4.13
※박태준
(자민련 의원)
김정길
(변호사)
제3회 지방선거
2002.6.13
이한동
(무소속 의원)
송정호
(법무연수원장)
제16대 대선
2002.12.19
김석수
(연세법학진흥재단 이사)
심상명
(전주지검장)
제17대 총선
2004.4.15
고건
(국제투명성기구 한국본부 회장)
강금실
(변호사)
제4회 지방선거
2006.5.31
※한명숙(?)
(열린우리당 의원)
※천정배
(열린우리당 의원)
괄호 안은 총리 지명 당시 직함. ※표시는 여당(공동여당)의 당적을 가졌던 사람임.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한명숙 총리후보 첫 주말…꼬리표 뗄때까지는

한명숙(사진) 국무총리 후보자는 26일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중앙청사 별관 3층에 임시 사무실을 마련했다.

그는 이곳에서 27일 조영택(趙泳澤) 국무조정실장과 총리비서실장 대행인 임재오(林載五) 정무수석비서관에게서 정책 현안 및 인사청문회 준비사항을 보고받는다. 현안 업무 보고는 국무조정실이, 인사청문회 관련 업무는 총리비서실이 각각 맡는다. 보고는 매일 오전과 오후 2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총리비서실은 29일경 총리인준 요청서를 국회에 보낼 예정이다. 국회는 총리실이 인준요청서를 보낸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청문회를 거쳐 본회의에서 인준동의안을 처리해야 한다.

총리 자격으로 하는 업무는 후보자 꼬리를 뗀 후에야 할 수 있다. 그동안 총리의 공식 일정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인 한덕수(韓悳洙) 총리 직무대행이 맡는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과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총리 집무실로의 이동도 국회 인준동의안 처리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차량 지원과 경호 등 총리 지위와 관련된 각종 편의 제공도 임명동의안 처리 이후로 미뤄진다.

한 후보자는 지명 이후 첫 주말인 25, 26일 공식 일정 없이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동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며 총리실의 보고 자료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6일에는 남편 박성준(朴聖焌) 성공회대 겸임교수와 서울 중구 장충동 경동교회에서 예배를 봤고, 자신의 인생 스승으로 생각하는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한승헌(韓勝憲) 전 감사원장, 강원룡(姜元龍)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감사 인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후보자는 다음 주부터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을 차례로 방문할 계획이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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