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녕]통일부 또 장밋빛 전망인가

  • 입력 2005년 10월 22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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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측이 명분만 주면 해결하겠다는 것이 기조인 것으로 보인다. 잘 해결될 것이다.”

현대의 대북사업 북측 파트너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가 20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현대와의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데 대한 통일부 관계자의 분석이다.

담화문 내용이 자극적이고 섬뜩하기까지 한 것과는 달리 통일부의 분석은 지극히 낙관적이고 희망적이어서 놀랍다.

아태평화위는 현대 측의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의 퇴출을 ‘배신’ ‘배은망덕’이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비난했다. 심지어 “정 씨 가문의 자산을 현 씨 가문으로 빼돌리는 데 걸림돌이 되는 가신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는 여론이 분분하다” “미국과 한나라당의 검은 손이 깊숙이 뻗치고 있다는 설도 떠돌고 있다”는 매도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사업 파트너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아닐뿐더러 그동안 현대가 북한에 쏟은 정성과 돈을 감안한다면 험담치고는 정도가 너무 심하다. 앞으로 다시 안 볼 상대에 대한 독설로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도 통일부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아 어안이 벙벙하다. 한 당국자는 브리핑에서 “담화 앞부분의 과거에 대한 지적보다는 뒷부분의 미래에 대한 언급을 주목해야 한다”며 ‘희망론’을 폈다. 그러면서 현대와 북한 사업자 간의 대화를 통한 해결을 주문했다.

대북 문제에 관한 통일부의 낙관적 해석은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8월 말 북한이 김 전 부회장의 대표이사직 퇴진을 문제 삼아 일방적으로 금강산 관광객 축소를 발표했을 때도 통일부는 “앞으로 잘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정동영 장관은 “남북관계가 성숙돼 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홍역으로 이해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아직까지 풀리지 않았다.

또 7월 말 4차 6자회담에서 북한이 평화적 핵이용 차원에서 경수로 건설사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밝혔을 때도 통일부 당국자는 “고차원적인 협상전략”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평가했다. 하지만 회담은 결국 경수로를 건설해 주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대북문제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 집단인 통일부의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는 있다. 하지만 매번 이런 낙관론에다 미지근한 대응 위주인 것은 문제다. 정부가 지나치게 북한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이 그래서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정부가 북한과 거래를 하든 협상을 하든 기업 등 민간부문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대북 문제에 관한 한 정부와 기업은 서로 손발을 맞춰야 하는 파트너인 셈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1조5000억 원의 돈을 쏟아 부으면서 숱한 곤욕을 감내해 왔는데도 하루아침에 팽(烹)당할 위기를 맞은 현대의 처지를 정부가 모른 체한다면 다른 어떤 기업이 정부를 믿고 사업 파트너가 되려고 하겠는가.

통일부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장밋빛 전망으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따끔한 충고와 함께 기본적인 상도(商道)가 뭔지도 깨우쳐 줘야 할 것이다. 요컨대 당당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같은 자세는 이번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대북 협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도 있지 않는가. 통일부는 이왕이면 국민과 기업 모두에게 사랑받는 시누이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진녕 정치부장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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