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무작정 쏟아내는 정치권 독도대책

  • 입력 2005년 3월 21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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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본 시마네(島根) 현이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 조례안을 통과시키자 국회는 벌집을 쑤신 듯했다. 여야 의원 가릴 것 없이 조례안 철회 결의안에 이름을 올렸고, 앞 다퉈 독도를 찾았다.

열린우리당 유기홍(柳基洪), 한나라당 고진화(高鎭和) 의원 등은 뭍의 흙을 갖고 가 독도에서 합토(合土)식을 했다. 한나라당 강재섭(姜在涉)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19일 독도 경비대 내무반에서 당직자 회의를 열기도 했다.

독도 문제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감안할 때 국민 대표인 의원들의 반응은 어쩌면 지당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일본의 도발 이후 일부 의원들이 쏟아 낸 대책을 보면 정치권이 효율적이고 책임있는 자세로 민심을 대변하고 있는지 의아해진다.

열린우리당 김태홍(金泰弘) 의원 등은 최근 독도를 한일 간 중간 수역에 ‘방치’한 한일어업협정에 대한 국정조사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당론이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다.

한나라당 맹형규(孟亨奎) 정책위의장은 20일 “독도에 여객선을 이용해 해상호텔을 짓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독도의 선박접안시설은 2003년 태풍 ‘매미’로 상당 부분 파괴돼 아직도 수리 중이다.

급기야 법조인 출신인 한나라당 원희룡(元喜龍) 최고위원은 20일 일제 침략 행위를 옹호하는 행위나 발언 등을 처벌하기 위해 ‘일제 침략 행위 왜곡 및 옹호 방지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자칫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 일종의 사상 통제적 발상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왔다.

이에 앞서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는 구체적인 방법은 생략한 채 국민 성금을 모아 독도에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 동상과 거북선 모형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독도 문제는 전문적이고 정교한 대처가 요구되는 민감한 외교 사안이다. 실현 가능성에 대한 치밀한 검토 없이 정치권이 남발한 대책은 결과적으로 정치 혐오감만 증폭시킬 수 있다.

독도를 다녀 온 한 의원은 기자에게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독도는 조용히 있더라”고 말했다. 정치권이 되새겨볼 말이다.

이승헌 정치부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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