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창위]냉정하게 일본을 바라보자

  • 입력 2005년 3월 20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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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사태로 촉발된 험악한 한일 관계는 이제 ‘시계(視界) 제로’의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일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일본 측에 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발이나 비난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일 관계의 이중성을 고려하면 명분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일본대사관이나 탑골공원 앞에서의 단지(斷指)나 할복 시도는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일제 차에 대한 방화나 식당에서의 ‘일본인 사절’은 보기에 따라 실소만 자아낼 뿐이다. 반일이나 극일에도 절도와 품위가 필요하다고 한다면 지나친 주장일까.

시간이 지나면 이번 사태도 어떻게든 봉합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망언과 터무니없는 주장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냉정한 판단으로 대일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일본 정부의 왜곡된 역사인식의 배경과 본질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업협정 폐기주장 도움안돼▼

독도는 일제가 러-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후인 1905년 2월 22일에 침탈한 대한제국의 첫 영토였다. 그 이후 을사늑약, 정미 7조약 및 경술국치로 우리는 일본에게 병합됐으니 따지고 보면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략의 출발점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일본의 패전 후 침략전쟁의 총책임자였던 일왕은 전쟁 책임에서 면제됐다. 침략전쟁을 수행했던 많은 사람들도 면죄부를 부여받고 전후 일본의 재건에 나섰다. 미국이 효과적인 일본 통치를 위해 그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즉, 오늘날 일본의 독도 시비와 역사 왜곡의 뿌리는 일왕과 군국주의자에 대한 정당한 처벌과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데에 있는 것이다.

그런 사정을 이해하지 않고 단편적이고 감정적으로 일본을 대하는 것은 독도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컨대, 이번 기회에 독도를 지키기 위해 한일어업협정을 폐기해야 한다고 일부 정치인 등이 주장하지만 이는 비합리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비록 독도 주변의 중간수역에서 한일 양국이 공동조업을 하고 있지만 우리 어선이 중간수역 대부분에서 조업권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마네 현의 어민들이 왜 다음 수순으로 어업협정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외교통상부와 해양수산부도 뒷짐만 지고 있지 말고 적극적인 홍보와 설득에 나서야 한다.

어쨌든 일본은 패전 후 60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현재의 일본을 과거의 일본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는 없다. 오늘의 일본은 패망한 일본제국이라는 밑그림 위에 덧칠된 그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앞으로 어떻게 복원될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식민지 지배의 치욕과 문화적 우월감을 걷어내고 이성적으로 일본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합리적 한일관계 정립을▼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는 러-일전쟁 후 침략을 가속화한 일본을 ‘술에 취해 말을 타고 달리는 여우’와 같은 나라였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다행히 태평양전쟁의 패전으로 여우의 환상은 무너지고 우리는 독립했지만, 광신적 군부와 무능한 일왕 그리고 그들을 지지한 우중(愚衆)이 만들었던 일본제국의 초상화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양국 국민 모두에게 불행했던 일본제국의 역사를 교훈 삼아 합리적인 한일 관계를 정립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하는 시점이다.

이창위 대전대 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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