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北核 불감증

  • 입력 2005년 2월 18일 17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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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돌발적인 핵무기 보유 선언이 우리 사회에 미친 충격파가 우려했던 것만큼 크지는 않은 것 같다. 악재에도 불구하고 증시는 모처럼의 활황세를 이어가고 있고, 한국의 대외신인도도 그대로이다. 사회적 동요도 눈에 띄지 않는다.

1993, 94년 1차 북핵 위기 때 안보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됐던 것과는 사뭇 딴판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성숙해졌고, 위기 대처 능력이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평온함이 행여 북핵 문제의 장기화에 따른 염증이나 무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완전히 떨치기는 어렵다. 최근 북핵 국면의 몇몇 이상 기류도 찜찜하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안정을 위협하는 주체와 위협을 받는 객체가 어느 틈에 뒤바뀐 듯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는 점이 그렇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위협하지 않고, 북한의 체제를 보장해야 한다는 대북 안전보장 문제가 6자회담 등에서 거론되어온 것은 얼마나 역설적인가. 북한의 딱한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들의 위기는 경제난 속에서도 남침 의도를 포기하지 않고,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해 온 데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럼에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핵과 미사일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억제 수단’이라는 북한의 주장에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1993년 6월 김영삼(金泳三) 당시 대통령이 “핵무기를 갖고 있는 상대와는 결코 악수할 수 없다”고 말했던 것과 비교하면 북핵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에 혼란스러운 변화가 일고 있다는 증거이다.

북핵 문제를 마치 북한과 미국만의 문제인 양 여기는 시각도 수긍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국가정보원은 15일 “북한에 핵무기가 있다면 비행기로 투하하는 재래식일 것”이라고 국회에 보고했다. 남한이 북한의 핵 위협에 직접적으로 놓여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 일각엔 ‘북한이 동족인 우리에게 설마 핵무기를 사용하겠느냐’라거나, ‘통일이 되면 북핵은 우리 것이 되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의 무책임한 이야기가 없지 않다.

정부가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을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로만 간주해 ‘외교적 평화적 해결’ 원칙만 되풀이할 뿐 ‘북핵 불용(不容)’을 과연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것도 안타깝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데는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북한을 자극할 것을 우려해 핵을 포기하라고 직접 단호히 요구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가 허용할 수 없는 북핵 문제의 ‘레드 라인’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북핵 문제는 고질적인 난치병을 다루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증상이 급격히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근본적인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려면 병인(病因)을 정확히 진단하고 병세(病勢)에 맞춘, 가장 효율적인 치료법을 찾아야 한다. 핵 위기는 북한이 초래한 것이고, 우리는 그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을 수 있는 당사자임을 직시하는 것이 우선이다. 북핵 위기는 실제 상황이다.

한기흥 정치부 차장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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