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시험 수험생들 공고지역 따라 위장전입 극성

  • 입력 2005년 1월 25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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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시험 정보를 공유하는 한 인터넷 카페. 최근 공무원 시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주소지 위장 전입에 대한 문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공무원 시험 정보를 공유하는 한 인터넷 카페. 최근 공무원 시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주소지 위장 전입에 대한 문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정모 씨(27)는 지난해 주소를 3번이나 옮겼다. 처음 주소를 옮긴 것은 지난해 3월 초. 현재 거주하고 있는 부산에서 먼 친척집이 있는 울산으로 이전했다. 그러나 실제 이사를 한 것은 아니다.

그가 다니는 공무원 고시학원의 강사가 “3월경 울산시가 공무원을 뽑으니 미리 주소를 옮겨 놓으라”고 한 말을 듣고 ‘위장전입’을 한 것.

서울시를 제외한 모든 광역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 선발 시 시험공고 이전에 주소지나 본적지가 해당 지자체로 돼 있는 사람에게만 응시 기회를 주고 있다.

울산시는 강사의 말처럼 3월 20일 시험공고를 냈다. 그러나 정 씨는 이 시험에서 떨어졌고 7월 말경 주소를 다시 부산으로 옮겼다. 때마침 부산시는 8월 19일 공무원 임용공고를 냈다.

10월 부산시 공무원 필기시험에서도 낙방한 그는 지난해 말 또다시 주소를 경기도로 옮겼다. 공무원시험 정보를 공유하는 한 인터넷 카페를 통해 올해 초 경기도가 공무원시험 공고를 낸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

그러나 경기도에 연고가 없었던 그는 인터넷 카페의 자유게시판에 “경기도로 주소를 옮길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글을 남겼고 곧바로 몇 건의 답장이 왔다.

정 씨는 “경기도에 살고 있는 한 수험생이 ‘자신의 집으로 주소를 이전해도 좋다’고 해 얼굴도 모르는 그 수험생의 집으로 주소를 옮겼다”며 “주소를 빌려준 수험생은 ‘대신 나중에 자신이 주소를 옮길 때도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공무원시험 응시생들의 위장전입이 성행하고 있다. 예전에도 가끔 이런 문제가 있긴 했지만 최근 취업대란으로 그 정도가 매우 심해졌다는 게 수험생과 고시학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수험생 김모 씨(26)는 “올해 초 경기도와 인천시, 대전시 등이 공무원 임용시험 공고를 냈는데 이에 앞서 주소를 이전하려는 응시생들의 글이 인터넷사이트마다 넘쳐났다”고 말했다. 급기야 관리자들이 ‘주소 이전과 관련된 글을 올리지 말라’는 내용의 공지사항을 올렸을 정도라는 것.

서울 H고시학원의 상담실장은 “서울에 사는 수험생의 경우 서울은 거주지 제한을 두지 않고 있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측면이 있다”며 “이 때문에 상당수 서울지역 수험생이 경기도나 인천시로 주소를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주소이전 시 통·반장에게 도장을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번거로웠지만 현재는 전입신고서만 내면 주소 이전이 가능하다. 본적지 역시 분가신청서를 내는 등의 방법으로 어느 곳으로든 옮길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경기도 관계자는 “위장전입을 해 시험을 치른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실제 적발이 매우 어려울뿐더러 설령 적발을 하더라도 주소지를 옮겼다고 모두 위장전입으로 볼 수도 없어 사실상 단속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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