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교 섹시한 모습에 홀딱 반했시요”…북한도 韓流바람

  • 입력 2004년 12월 31일 17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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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한 해 동안 북한은 휴대전화를 허용했다가 다시 금지시키는 등 개방과 폐쇄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에서 부의 상징으로 떠오른 휴대전화. 휴대전화가 있는 사람은 보안원(경찰)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국가적 역량을 쏟아 부은 정보기술(IT)산업은 중국에 진출해 한국 프로젝트를 수주하기에 이르렀다. 남북관계는 화해와 긴장의 냉·온탕을 오갔지만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첫 상품이 한국의 백화점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김정남의 해외체류와 고영희의 사망, 장성택의 실각으로 권력과 후계구도를 둘러싼 온갖 추측이 난무하기도 했다.-그래픽 윤상선 기자
2004년 한 해 동안 북한은 휴대전화를 허용했다가 다시 금지시키는 등 개방과 폐쇄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에서 부의 상징으로 떠오른 휴대전화. 휴대전화가 있는 사람은 보안원(경찰)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국가적 역량을 쏟아 부은 정보기술(IT)산업은 중국에 진출해 한국 프로젝트를 수주하기에 이르렀다. 남북관계는 화해와 긴장의 냉·온탕을 오갔지만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첫 상품이 한국의 백화점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김정남의 해외체류와 고영희의 사망, 장성택의 실각으로 권력과 후계구도를 둘러싼 온갖 추측이 난무하기도 했다.-그래픽 윤상선 기자
《북한에도 2005년은 8·15광복 60주년과 노동당 창건 6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다. 북한 노동당 지도부가 대부분 고령인 점을 감안할 때 당 창건 60돌을 맞는 10월 10일을 계기로 당의 신구(新舊) 교체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후계 구도가 윤곽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 북한 당국이 올해 가장 역점을 두는 분야는 ‘먹는 문제’ 해결을 포함한 경제 살리기. 그러나 결국 사회주의 고유의 카드를 하나 둘 던지고 세계 흐름에 휩쓸려 가는 양상을 보일 것이다. 사회 문화적으로는 한류(韓流)현상이 뚜렷해지고 해외교류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예상되는 북한의 변화를 키워드 5개로 간추려 살펴본다.》

“중국식 개혁 개방에서 개방을 뺀 과감한 개혁이 있을 것이다.”

최근 중국을 방문한 전직 북한 노동당 간부 장 모 씨(68)의 전망이다. 그는 노동당 창건 60주년을 맞는 올 10월경 당 지도기관에서 신구 교체가 전면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중국에 온 북한 주민들도 이구동성으로 “북한에서는 올해 2002년 7·1경제개혁조치에 버금가는 과감한 조치가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고 전했다.

벌써 새해에 화폐개혁이 단행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지금까지 사회주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자랑하던 국가 정책들이 전면 수정 개편될 것이라는 설명이 곁들여진다. 개인 소유권과 영업권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허용할 것이라는 소문도 파다하다.

그러나 북한이 아무리 ‘개혁은 OK, 개방은 NO’라며 개혁과 개방을 분리하더라도 개방 흐름은 자연발생적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규모가 영세해 각 생산단위, 기관이나 개인이 해외교류를 넓혀 나가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이 돈을 낳는다.”

지금의 북한만큼 이 말이 실감나는 나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실례로 북한에서 마른오징어 1kg은 2004년 7월경 5000원(약 2.5달러)에 거래됐지만 12월 말에는 1만 원에 팔렸다. 올해 2월경에는 더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7월에 마른오징어를 사두면 반년 사이에 본전의 2배 이상을 뽑는다.

북한엔 지금 돈을 굴려 ‘큰돈’을 만드는 ‘신흥 부르주아’들이 급격히 양산되고 있다.

북한에 첫 ‘신흥 부르주아’가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초반. 각종 ‘외화벌이 단위’가 창궐하고 큰손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당시 입소문에 오르던 ‘큰손’들은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1990년대 중반 수백만 명이 굶어죽으면서 민심이 흉흉해지자 북한 당국은 이들 ‘큰손’을 민심달래기용 제물로 바쳤다.

최근 새로 등장하고 있는 ‘부르주아’들은 돈이 많아도 든든한 권력을 끼지 못하면 언제든지 제물로 바쳐질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웠다. 정경유착의 힘을 깨달은 셈이다.

자연히 당국의 검열은 힘을 잃고 있다. 과거 인기 있던 당, 군, 보위부, 안전부와 같은 권력도 식량이나 생필품의 국가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돈과 결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점점 부패는 통제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고 있다. 10년 전까지는 군 출신 당원에 좋은 대학을 나와 권력기관에 들어가면 1등 신랑감으로 꼽혔지만 지금은 돈이 최고다.

사적 소유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 2005년, 돈과 권력의 자리 교체는 더욱 가속화할 것이 분명하다.

“‘장길산’ 보내줘.”

2001년 입국한 탈북자 박모 씨(34)는 11월 말 북한 국경지역에 사는 형과 통화하다가 그달 17일 종영된 드라마의 비디오테이프를 보내달라고 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서울 거주 탈북자 김모 씨(37·여)도 최근 ‘겨울연가’ VCD를 보내달라는 북한 언니의 부탁을 받았다.

배용준의 다감한 모습은 가부장제도에 한껏 억눌려 있는 북한 여성들에게 경이로움 그 자체로 다가섰다. 반대로 순종형의 여성상에 익숙해 있던 북한 남성들은 ‘올인’에 출연한 활달하고 적극적인 송혜교의 섹시한 모습에 환호했다. 지난해 10월 평양을 다녀온 한 일본 교포는 평양 젊은이들 속에 ‘송혜교 머리’가 유행하고 ‘실미도’ 테이프가 돌아다닌다고 전했다.

몇 년 동안 ‘장군의 아들’ 같은 액션물이 북한에서 부동의 인기를 누렸지만 최근 들어 점점 한국 최신 상영작들을 찾는 추세다.

중국 불법 복제물이 흘러들어가 한국 드라마 VCD 가격도 장당 북한돈 2000원(약 1달러) 정도에 밀거래된다.

북한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의 인기는 수십 년간 지속돼 온 ‘메이드 인 저팬’의 인기를 눌렀다. 특히 한국 의류나 화장품이 각광을 받고 있다.

중국 상인들은 북한으로 들어가는 상품에 한국 상표를 위조해 붙이는 데 재미를 들였다. 예를 들어 현재 중국산 장판은 1m에 북한돈 3000원(약 1.5달러) 정도 하지만 한국 상표만 붙이면 2배나 비싸게 팔린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실정은 극소수 상류층에만 통하는 비밀이었지만 지금은 누구에게나 현실로 다가가고 있다.

북송된 탈북자만 수만 명, 여기에 해마다 방문 및 업무차로 중국에 나오는 북한 주민과 한국 입국 탈북자들의 가족까지 포함하면 ‘한류의 전령사’들은 엄청난 숫자에 이른다.

입소문을 타고 북한에 흐르는 한국에 대한 동경은 ‘남조선 승용차가 세계 1위’라는 식의 과장된 소문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1980년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35돌을 맞아 진행된 제6차 당 대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처음으로 외국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열 5위로 등장했지만 대회 마지막 날인 14일에는 당·정·군의 모든 실권을 거머쥐었다.

2005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60돌이 되는 날이다. 이날 전 세계의 관심은 ‘3대에 걸친 세습 후계구도’의 등장에 집중될 것이다.

지금까지 가장 유력한 후계자 후보는 김 위원장과 고영희 사이에 태어난 김정철(23). 김정철에 대해서는 1990년대 중후반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를 다녔다는 사실만이 확인될 정도로 베일에 싸여 있다.

언제 누가 후계자가 될지는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올 한 해 후계자를 둘러싼 무성한 추측이 꼬리를 이을 것임이 분명하다.

2004년은 탈북자 관련 뉴스로 떠들썩한 한 해였다.

심지어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다시 U턴한다는 소식까지 더해 충격을 주었다.

이미 북한으로 돌아간 탈북자는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재 40여 명이 중국으로 출국한 뒤 여권 체류기간을 넘겼고 체류기간이 남아있는 탈북자들까지 합하면 U턴 예상자는 더욱 늘어난다.

북한은 지난해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해 한국에서 돌아온 탈북자를 환대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국에서 탈북자들을 보는 시각은 싸늘해지고 있다.

편견 속에서 정착에 실패한 탈북자들은 올해도 북으로 U턴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북한에서는 1만 달러(약 1050만 원)만 있으면 평생을 걱정 없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부정적 시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썩어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돌아온 사람이 팔자 고치고 ‘떵떵거리며’ 사는 모습을 보면서 북한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올해 흥미롭게 지켜볼 대목 중 하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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