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2004년을 반성한다”

  • 입력 2004년 12월 26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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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 가는 2004년을 돌아보는 정치권의 표정은 밝지 않다. 열린우리당은 일년 내내 개혁을 외쳤지만 국민의 반응은 싸늘했다. 성과 또한 극히 미흡했다. 한나라당은 국민으로부터 뼈를 깎는 체질 개선을 요구받았지만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여당 의원들은 국민여론을 살피지 않은 채 개혁 구호에 매몰됐다고 자성했다. 야당 역시 민심과 시대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열린우리당 “개혁에 취해 여론 놓쳐”▼

“개혁만이 최고라고 생각해 무조건 밀어붙이려 했다.”

상당수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2004년을 되돌아보며 이 같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4·15총선의 민심을 ‘개혁 지상주의’로 단정하고 국민설득과 대야협상에 소홀했던 것이 결국 낙제점에 가까운 국정운영 성적표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수도 이전 문제=대표적인 실패 사례라는 진단이 많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도 지적했듯이 대국민 홍보 전략이 부족했다는 점에 여권 인사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찬성 30%, 반대 60%로 나타난 국민여론에 눈감은 채 언론과 야당 탓만 했을 뿐,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데는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열린우리당 배기선(裵基善) 의원은 9월경 수도 이전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 측에 “아무리 좋은 안이라고 얘기해 봐야 무슨 소용이냐, 국민이 이해해야지”라고 쓴소리를 한 적이 있다.

행정자치위의 박기춘(朴起春) 간사는 “치밀한 홍보 전략 없이 당과 정부가 의욕만 앞세운 아마추어 행태를 보여 결국 국민 저항에 부닥쳤다”고 토로했다. 여권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후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국가보안법 등 4대 법안=당의장 비서실장인 정장선(鄭長善) 의원은 “총선 승리의 자신감에 넘쳐 개혁 도그마에 도취했다”며 “오만함 때문에 개혁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쳤다”고 회고했다.

박 간사는 “국가보안법 같은 어려운 문제부터 정면으로 부닥치는 미숙함을 보였다”며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풀어 갔으면 성과가 컸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정기국회 전략 부재=예년 같으면 국정감사가 이미 끝났을 10월 초 감사에 들어감으로써 9월 한 달을 공쳤다. 또 10월 말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빚어진 국회 파행이 11월 중순까지 이어지면서 법안 처리에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처음부터 ‘100대 개혁과제’로 치고 나오는 바람에 보수층의 반발을 자초한 여권은 이후 ‘50대 개혁과제’로 후퇴했다가 결국 ‘4대 법안’에도 힘이 달리는 모습을 보였다. 대국민 설득, 대야협상, 당내 의견수렴, 국회 일정 등 어디서도 정교한 로드맵이 없었고, 지도부는 ‘연내 처리’ 구호만 되뇌었다.

야당 주장을 들어주면서 대화를 강조했던 행자위 이용희(李龍熙) 위원장이 친일 및 과거사 진상규명법안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다는 점은 새겨 볼 만한 대목이다.

김부겸(金富謙) 의원은 “4인 대표회담처럼 진작 야당을 파트너로 인정했더라면 정치권이 국민 신뢰를 잃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한나라당 “변신커녕 우왕좌왕만”▼

한나라당은 17대 총선에서 원내 2당으로 전락했다.

이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변화를 요구받았지만 여전히 정치적 고비에선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수구보수’라는 이미지를 떨쳐내고 새로운 보수정당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하는 데도 성공하지 못했다.

▽대통령 탄핵 추진과 역풍=한나라당이 가장 뼈저리게 여기는 대목이다. 이방호(李方鎬) 의원은 “탄핵 추진 당시 최병렬(崔秉烈) 전 대표를 두 차례 찾아가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며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당 내에선 탄핵 추진이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로 굳어진 ‘한나라당=차떼기당’이라는 이미지로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강박 관념이 빚은 ‘대형 사고’라는 의견이 많다. 수도권의 한 전직 의원은 “많은 의원들이 대통령을 정면으로 흔드는 게 최고의 선거 전략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뭔가에 홀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뒤늦게 탄핵반대 여론의 심각성을 깨달았지만 결국 총선에서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수도 이전 대처=한나라당의 대응은 한마디로 ‘엉거주춤’이었다. 충청권 민심을 고려해 당초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찬성했다가 여권의 수도 이전 추진이 본격화되자 뒤늦게 반대하고 나섰다.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으로 충청권에서 한나라당 지지도는 곤두박질쳤다. 박근혜(朴槿惠) 대표 등 지도부는 충청권에 특별행정시 건설을 골자로 하는 대안 마련을 주장했으나 당 내 강경파에 밀려 아직 당론도 마련하지 못했다.

홍문표(洪文杓) 의원은 “뚜렷한 기준 없이 여권에 끌려다니다 결국 충청권에서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이철우 의원의 노동당 가입 의혹 제기=별다른 결론 없이 흐지부지돼 한나라당이 본전도 찾지 못했다는 분석이 많다.

“이 의원이 지금까지 간첩으로 암약하고 있다”며 의혹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검증도 없었다. 폭로 당일 일부 의원들이 과거 안전기획부에서 관련 수사를 총괄했던 정형근(鄭亨根) 의원에게 자문을 했고, 이를 보고받은 지도부는 국회 본회의에서 폭로키로 결정했다.

대여 강경파인 한 3선 의원은 “국가보안법 문제로 기 싸움 중인 상황에서 ‘이철우 카드’는 매력적이었지만 한나라당의 이념적 한계를 자인한 격이 됐다”고 말했다.

남경필(南景弼) 원내수석부대표는 당의 ‘좌파 정권’ 공세와 관련해 “‘주사파’ 등 정치적으로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바람에 국정 운영에 대한 정당한 문제 제기가 색깔론 공세로 왜곡돼 국민에게 전달됐다”고 토로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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