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날치기 파문’이후]‘국보법 기습’후 일단 숨고르기

  • 입력 2004년 12월 7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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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마음의 짐을 좀 덜었다.”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안의 ‘변칙 상정’이 이뤄진 뒤 열린우리당의 한 당직자는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무리수를 둬 상정을 강행한 만큼 ‘개혁 후퇴’라는 지지자들의 공박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었다. 이어 7일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는 “국보법을 연내처리하지는 않겠다”고 선언했다.

국보법 폐지안 변칙 상정과 국보법 연내처리 포기선언이란 언뜻 모순되는 두 정치행위는 ‘지지자들의 요구’와 야당의 반대라는 ‘현실의 벽’ 사이에 낀 여당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국보법 분리의 우여곡절=여권 수뇌부가 국보법의 연내처리를 유보하기로 내부방침을 정한 것은 지난달 초순경이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의 면담이 예정됐던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은 청와대로 가기 직전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을 찾았다. 그는 “국보법 문제는 지금 처리할 필요가 없다”는 김 전 대통령의 의견을 경청한 뒤 확신을 갖고 노 대통령을 설득했다. 그리고 김 의장과의 면담 직후인 11월 4일 노 대통령은 “산이 높으면 돌아가야 한다”는 말로 국보법 폐지안의 연내처리 유보 메시지를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전달했다. 이것을 이부영(李富榮) 의장이 받아 의원들에게 설파했다. 당내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서 압박을 받고 있던 천 원내대표도 이심전심(以心傳心)이었다.

희색 감도는 열린우리당 의총
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의원총회를 갖고 4대 법안의 처리 등 현안을 놓고 토론하고 있다. 전날 우여곡절 끝에 국가보안법 폐지안의 변칙 상정에 성공한 때문인지 의원들의 표정에 희색이 감도는 경우가 많이 눈에 띈다.-김경제 기자

문제는 언제, 어떤 명분을 가지고 국보법을 미루느냐가 고민이었다. 천 원내대표는 지난달 28일 당내 수뇌부 심야회동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보법 연내처리 유보를 선언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임채정(林采正) 의원 등 중진들이 가로막았다. 그러나 국보법 처리 연기 자체를 막은 것이 아니었다. 천 대표의 ‘결심’이 사전에 언론에 유출되자 선언의 효과가 반감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당 수뇌부는 “먼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지지자들의 이해를 구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 과정에서 한나라당 측에 “상정은 하되 국보법 강행처리는 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쓰겠다”고 했지만 거부당하자 6일 법사위에서의 국보법 폐지안을 변칙 상정한 것. 결국 이는 ‘노력하는 모습’에 해당되는 셈이었고 그 짐을 털자 곧바로 ‘연내처리 유보’ 선언이 나온 것이다.

▽임시국회 전망=국보법이라는 혹은 떼었지만 나머지 핵심법안은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은 오히려 더 커졌다. 그러나 어느 하나 만만한 안건이 없다. 사립학교법 친일진상규명법 신문법 등 ‘3대 법안’은 물론이고, 기금관리기본법 국민연금법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설치법 등을 놓고도 한나라당과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는 이날 ‘대타협’을 하자는 천 원내대표의 제안에 대해 “대타협을 원한다면 국보법 폐지라는 당론을 폐기하고 날치기 미수난동사건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또 “나머지 3대 법안은 위헌적 요소를 삭제하고 야당과 합의처리하겠다는 약속을 하라”고 여당을 압박했다. 한나라당은 임시국회 개최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예산안과 이라크파병연장동의안을 정기국회 회기 내 처리키로 방침을 세웠다.

6일 국보법 폐지안 변칙상정 과정에서 열린우리당과 동지애를 과시했던 민주노동당은 국보법 연내처리 연기방침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설사 임시국회가 열린다 해도 돌파구를 찾지 못할 경우 핵심현안 처리는 결국 해를 넘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많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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