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어 총리와 고이즈미 총리는 국제무대에서 첫손 꼽히는 ‘부시의 친구들’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부시 대통령과 여러모로 기질이 통하는 듯 기회 있을 때마다 친근감을 나타낸다. 미국 대통령선거전이 한창일 때 푸틴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는 부시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응원했다. 블레어 총리는 지난해 7월 이라크 무기와 관련한 정보조작 의혹에 시달리다 일본을 방문했을 때 고이즈미 총리가 전통여관의 잠자리까지 직접 챙기자 매우 고마워했다는 후문이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정치의 냉엄한 속성을 고려할 때 정상간의 우정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건 분명하다. 부시-블레어, 부시-고이즈미의 우정도 영국과 일본이 이라크전쟁에 동참하지 않았다면 성립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국가이익을 치열하게 다투는 협상 테이블에서 언제라도 얘기가 통하는 ‘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본인은 물론 국익을 위해서도 소망스러운 일이다. 한 나라의 정상이 미국 대통령의 크로퍼드목장에 초대받는지 여부가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파급 효과를 발휘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격의 없이 우정을 나누는 외국정상은 있는가. 아직 없다면 20, 21일 칠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새 친구를 사귈 절호의 기회다. 한국의 집권자가 국제무대에서 외톨이로 남는 것은 한국 국민으로서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기왕이면 한반도 운명에 강한 발언권을 가진 정상과 의기투합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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