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종구/대통령의 지역色발언

  • 입력 2004년 7월 30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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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9일 전남 목포에서 한 발언이 시비를 낳고 있다.

“이 지역이 소외되지 않도록 챙길 많은 인물들이 정부와 국회에 포진하고 있다… 소홀하다 싶으면 이 지역 출신 장관들에게 다그쳐라. 그래도 소홀하다 싶으면 정찬용 수석이나 이병완 홍보수석에게 얘기해라.”

나아가 노 대통령은 10개월여 전 앙숙처럼 헤어졌던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협력’을 거론했다. 이 지역의 뿌리 깊은 민주당 정서를 의식한 발언으로 들리기에 충분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부산에 가서도 그대로 말할 수 있느냐”는 비아냥거림이 나오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특정 지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들만의’ 귀에 솔깃한 말을 쏟아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6일 경북 포항을 방문해서는 수도 이전과 관련해 “경북은 대단히 유리한 입지를 갖게 되는 것 아니냐… 예전의 오지가 수도권이 될 수 있다”고 달랬다. 9일에는 전북 군산을 찾아 새만금 사업과 김제공항 건설 추진을 약속했고, 8일에는 인천에서 국립대 신설을 언급했다.

대통령후보 시절이던 2002년 12월에는 인천에서 “돈 안 되고 시끄럽게 싸우는 것은 충청도로 보내고 인천은 21세기 물류중심으로 육성하자”고 주장한 적도 있다.

지역과 상황에 따른 대통령의 ‘맞춤 발언’은 외국에 갔을 때도 별반 다르지 않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미국을 방문해 “53년 전 미국이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쯤 정치범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며 한미동맹을 부쩍 강조하는 등 미국과 ‘코드 맞추기’에 진력했다. 당시 자주 외교를 내세우던 노 대통령의 태도 변화에 지지자들마저 당혹해할 정도였다.

때와 장소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노 대통령이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듯 ‘정치인’의 경우는 더욱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국정 전반을 책임지고 전 지역의 이해관계를 아울러야 하는 대통령은 일반 ‘정치인’과는 달라야 한다.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 어디를 가든, 상황논리보다는 일관된 국정철학과 원칙을 내세우는 대통령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윤종구 정치부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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