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脫北]北자극 우려 두달간 철통보안속 교섭

  • 입력 2004년 7월 27일 18시 44분


코멘트
사상 최대 규모인 탈북자 480여명의 일괄 국내 입국은 두 달여에 걸친 살얼음판을 걷는 비밀 외교 교섭의 결과였다. 탈북자 1진 230여명이 도착한 27일에도 정부는 언론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하며 비공개 기조를 유지했다. 다음은 관계당국과 탈북자 지원단체의 설명을 근거로 재구성한 그동안의 진행 과정.

▽생사를 걸고 모여 든 탈북자들=이번에 입국한 탈북자 480여명이 체류하던 동남아시아의 A국가는 최근 몇 년 간 한국행이 가능한 동남아 B국가로 가기 위한 1차 기착지 역할을 해왔다.

이런 소문이 퍼지면서 중국에서 A국가로 넘어오는 탈북자 수가 지난해 말부터 급증하기 시작해 4월 들어 400명을 넘어섰다. 이들은 탈북자 지원단체가 제공하는 ‘안전 가옥’에 수용돼 있었지만 한국행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일부는 극심한 불안 증세를 보이며 소동을 벌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공관 등을 통해 이런 현실을 보고 받은 정부가 ‘수명∼수십명’ 단위의 ‘조용한 국내 이송’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을 내린 것은 5월 말. 그 직후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은 A국가의 정부 고위관계자를 만나 “탈북자 전원을 한국으로 곧바로 이송하게 해 달라”고 제안했다.

▽탈북자 이송 극비 프로젝트=A국가는 한국의 제안에 처음엔 난색을 표했으나 ‘철저히 극비로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고 정부가 이를 수용하면서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A국가는 △이 같은 탈북자 이송 경로가 공개될 경우와 △대(對)북한 관계가 악화될 경우에 대한 강한 우려를 표명했고 6월 한 달 간 정부는 이에 대한 끈질긴 설득작업을 벌였다.

이달 초 반 장관이 A국가의 고위 관계자를 잇달아 두 번 만나 ‘적극적 협조’를 당부하면서 양국간 교섭은 합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480여명의 일괄 이송 방법.

일반 항공기 이용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정부는 ‘특별전세기’ 2대를 띄우기로 결정했고 보안 문제 등을 감안해 가능한 한 하루에 모든 이송을 끝내는 방안을 구상했다. 그러나 A국가의 공항 사정과 영공 통과 문제로 이틀에 걸친 이송이 불가피해졌고 20일경 D데이가 27, 28일로 확정됐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언론에 대한 사전 브리핑 날짜는 D데이 전날인 ‘26일’로 결정했으나 한국 언론에 일찍 보도되면서 이런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A국가는 이송 사실이 공개되면서 한국측에 강한 유감의 뜻을 표명하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으나 ‘생사를 건 탈북자들의 한국행 꿈’이 실린 특별기를 세우지는 않았다.


그리던 남녘 땅에 첫발
동남아에 머물던 탈북자 1진 200여명이 정부 당국의 삼엄한 보안 속에 27일 오전 아시아나항공 편으로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성남=박주일기자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