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데니소프/北핵폐기-국제적 지원 동시이행을

  • 입력 2004년 6월 23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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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북핵 문제 논의를 위한 3차 6자회담이 시작됐다. 앞서 열린 1, 2차 회담에서는 극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미국과 북한 등 참가국들이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 위기의 평화적 해결 필요성에 대해 일정 수준의 공감대를 갖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 긍정적 성과라고나 할까.

물론 북한과 미국의 즉각적인 양보를 당장 기대하기는 어렵다. 양측은 오랫동안 서로에 대해 신랄한 선전전을 벌였고 여전히 공식적인 입장은 완강하며 끝까지 타협의 가능성을 내비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입장을 돌아보자. 북한은 원칙적으로 핵개발 계획 동결 의사를 내비쳤지만 이것은 미국이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 지원을 제공한다는 조건 아래서다. 반면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CVID)’ 원칙을 내세웠다.

지금까지 6자회담이 교착상태는 아니었더라도 그와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분쟁의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점차 진지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지만 비타협적인 자세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몇 가지 국제적 요인과 전반적인 남북한 관계에서는 진전도 있었다. 먼저 “북핵 문제는 6자회담의 틀 안에서 풀어야한다”는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자리 잡은 것이다. 얼마 전 G8(서방선진 7개국+러시아) 정상들도 베이징회담을 지지했다.

남북한간의 접촉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신호다. 가장 극적인 것은 최근 군사 분야 회담이다. 특히 두 차례나 서해에서 일어났던 무력 충돌 같은 사태를 피하기 위한 조치에 합의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나름대로 6자회담에서 반드시 해결돼야할 몇 가지 주요 논점을 꼽아보겠다. 첫째, 북한은 모든 군사적 핵 계획을 통제가 가능한 방법으로 폐기해야 한다. 둘째, 미국은 문서를 통해 법적인 의무를 지는 대북 안전 보장을 해야 하고 이에 대해 다른 참가국들의 보증이 있어야 한다. 셋째, 북한은 핵비확산체제로 복귀해야 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관계도 복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에너지 지원과 경수로건설이 재개돼야 한다.

이런 과정은 반드시 동시적으로(synchronously) 진행돼야 한다. 순차적으로 이행하다 보면 중간에 한쪽이 상대방이 이미 합의된 사항을 깨려한다는 의심을 제기하면서 또다시 문제가 원점으로 돌아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미국이 북한의 현 체제를 제거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북한이 이것을 완전히 믿게 됐을 때만이 북핵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낙관할 수 있다.

6자회담과 별개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남북한의 합의다. 예를 들면 한반도 비핵화 합의의 정신을 실천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남북한이 상시적인 논의 체제를 만들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어쨌든 현실주의자의 눈으로 보면 이번 3차 회담에서도 현재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결론이 바로 나올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 6자회담은 어차피 장기화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회담이 정체되기도 하고 때론 후퇴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북한과 미국 지도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확실한 점은 북핵 문제는 정치적 해결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는 것이다.

발레리 데니소프 러시아 모스크바국제관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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