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영균/遷都에 밀린 서민경제

  • 입력 2004년 6월 16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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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30년 전 어딘가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이 든다. 경제발전과 민주화 덕분에 몰라보게 달라진 지금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오랜만에 소신이 넘치는 대통령을 보게 된 때문만은 아니다. 여대야소의 강력한 정부가 탄생하고 일부 언론을 적대시하는 정권이 들어선 탓도 아니다.

불량 만두를 적잖이 먹었던 터에 이웃 일본이 우리 만두의 수입을 금지시킨다는 소식을 듣고 신세 한탄을 하자는 것은 더욱 아니다. 수도가 이전해 간다는 남쪽으로 서울 사람들이 대거 몰려가 부동산 투기가 한창이라고 하니 문득 70년대의 강남 개발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60, 70년대에는 ‘건설입국’이란 구호를 흔히 들을 수 있었다. 서울에선 청계천에 고가도로를 세우고 강남 개발을 밀어붙이지 않았던가. ‘국토의 재정비’라든지 ‘국토 개조’라는 말도 자주 들었던 것 같다.

당시의 에피소드 한 토막. 70년대 말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라면서 대대적인 취락구조 개선사업을 지시했다. ‘최우선 사업으로 추진하라’는 엄명에 따라 시멘트 모래 등 건설자재는 농촌으로 먼저 실려 갔다. 당연히 아파트 건설현장에서는 시멘트가 모자라 공사를 중단할 정도로 시멘트 파동이 심각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대통령에게 선뜻 직언을 하지 못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당시 경제부총리 S씨는 사표를 써들고 박 대통령을 세 번이나 찾아가 설득했다고 한다.

지금의 경제사정을 70년대와 비교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지만 요즘 서민경제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으리라. 시중 경기와 고용 투자 등 거의 모든 상황이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거나 버금간다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다.

그런데도 대통령을 비롯해 이 정부의 경제정책 책임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위기가 아니다’라고 합창을 했으니 서민들의 속이 오죽이나 답답했을까.

이런 사정을 헤아렸는지 노무현 대통령이 “영세상인과 서민이 말할 수 없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탄핵 복귀 후 첫 국회연설에서 ‘경제위기가 아니다’라고 강조한 말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언급이 없었지만 민생을 챙기겠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경제정책이 ‘민생’쪽으로 방향을 바꾼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구동성으로 ‘위기가 아니다’거나 ‘하반기부터 나아진다’라고 말한다.

서민들이 듣기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위기라고 자꾸 말하면 진짜 어렵게 된다’는 얘기도 국민을 우습게 보고 하는 말이다.

서민경제가 바닥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경제의 성장동력이 사라지고 있는 이 시점에 십수조원 내지는 수십조원이 드는 수도 이전이 꼭 필요한 것일까. 한 단계 도약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 하더라도 ‘정부의 명운과 진퇴를 걸고’ 이렇게 급하게 밀어붙여야 하는 걸까.

최소한 수도 이전에 따른 경제적 비용과 효과만이라도 철저하게 분석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수도 이전보다는 기술개발과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데 써야 하는 것은 아닌지도 따져 보기 바란다. 그 결과에 따라 수도 이전보다는 경제살리기가 더 급하다고 직언하는 관료들이 나왔으면 싶다. 다행히 노 대통령도 “일사불란을 참 싫어한다”고 했다.

박영균기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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