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우리당 ‘20년 집권론’

  • 입력 2004년 6월 9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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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총선 승리 후 당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야무진 말을 했다. ‘앞으로 20, 30년 집권세력의 토대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20년 집권’이다. 그땐 별로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의미심장한 말이다. 벌써 ‘대권 준비 입각’이란 말이 나오는 판이니 더욱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도 당선자 축하 만찬에서 ‘100년 가는 정당을 하자’고 했다.

총선 승리에 고무된 희망사항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고, 현 집권세력에 비판적인 사람들에겐 오만한 장담으로 들렸을지 모른다. 엊그제 재·보선에서 참패한 마당에 황당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정치는 단면이 아니라 연속이요, 움직이는 생물이다. 지금 선거 참패 문책론으로 우리당이 시끄럽지만 그것은 한 장 삽화이지 전체 큰 그림이 아니다. 1년 후 모습도 이럴 것이라고 믿는다면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것과 같다. 긴장감은 또 다른 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대권선거는 이번 선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20년 집권’은 대선과 총선 연승을 통해 집권세력이 다져온 자신감의 표출로 본다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결코 흘려들을 이야기가 아니다.

▼대선 - 총선의 자신감▼

노무현 정권의 출현이 보여주는 큰 그림은 무엇인가. 여러 풀이가 있겠지만 ‘변화 욕구’란 시대흐름을 유권자의 마음에 펼쳐 놓은 것 아닌가. ‘혁명적 개혁’을 투사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대권 경쟁은 앞으로도 변화 욕구와 날카로운 메시지 전달능력이 좌우할 것이다. 대통령 언행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는 했지만 우리당의 총선 과반의석 확보에는 대권 향방을 결정지었던 요인들이 그대로 작동했다. 야당의 대통령 탄핵 소추에 대한 민심 이반 덕을 보기도 했지만 본질적인 지지는 변화 욕구를 살려나갔다는 데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초선의원의 대약진이 이를 입증한다. 집권세력의 지지 연령층이 주로 30, 40대에 포진하고 있음을 볼 때 ‘20년 집권’은 비판세력이 보는 것처럼 황당한 오만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사모’ ‘국민의 힘’으로 대표되는 지지조직과 ‘서프라이즈’ 등의 네티즌들로 교직된 ‘친노세력’의 영역에 맞설 수 있는, 같은 크기의 조직화된 세력을 어느 정파건 갖고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지난 1년여 동안 거리 안팎의 정치공학적 위력을 실감하지 않았는가. ‘20년 집권’을 뜬금없는 소리라고 치부해 버릴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고 ‘20년 집권’이 가만히 있어도 굴러오는 떡은 아니다. 우리당 쪽은 차치하고 볼 때, 역설적으로 한나라당이 변수다. 과거처럼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면 가능하다. 한나라당의 대선 패인은 변화 욕구를 껴안지 못한 채 상대편 과실에서 승부수를 찾으려다 유권자 심리를 제대로 읽지 못한 데 있다. 개혁 구호처럼 후보가 제시한 것이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할 때 유권자는 후보의 개인적 과실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 지난 대선 결과다. 대선에 지고서도 총선 승리에 취했다가 다시 대선에서 패한 한나라당이다. 작은 것 취하다 큰 것 놓쳤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박근혜 체제가 탄탄대로에 올랐다고 하지만, 지금의 변화 내용과 속도라면 지난 대선 표차 2.3%의 벽을 넘기 힘들다. 대권 경쟁의 기본구도는 아직도 한나라당에 유리하지 않다는 말이다.

▼파워게임의 변수▼

‘20년 집권’은 권력 내부의 문제이기도 하다. 권력 구심력이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집권세력이 뒤바뀔 수 있고 집권 성패도 갈릴 수 있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을 ‘부활’에 비유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회가 의결한 ‘탄핵 대통령’의 멍에는 앞으로 당내 대권 경쟁을 둘러싼 권력 내홍에서 언젠가 불거져 나올 수 있다. 당정 분리를 내세우면서도 문득 드러나는 대통령의 친정체제 경향은 이를 사전 제압하려는 의도와 무관치 않은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당과의 창구로 내세웠던 정치특보를 당내 역풍을 맞자 불과 한달 보름 만에 폐지해버린 사건은 간단히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권력의 틈은 항상 안에서 비롯됐다. ‘20년 집권’, 그 말처럼 멀다는 것은 잊지 말라.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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