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나성엽/누구를 위한 브리핑실인가

  • 입력 2004년 5월 25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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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정부과천청사 2동 1층에서는 각 부처 장관과 출입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노동부 환경부의 합동 브리핑실 현판식이 열렸다. 그리고 이들 부처는 이날부터 청와대 국정홍보처 등에 이어 ‘개방형 언론 브리핑 체제’에 들어갔다.

이날 공개된 합동 브리핑실은 일견 으리으리했다. 148평 공간에 100여석 규모의 기사송고실과 브리핑룸, 접견실, 행정지원실 등으로 구성된 이곳은 특급 호텔 비즈니스센터와 견줘도 될 정도였다.

바닥에는 카페타일이 깔렸고 평면TV 6대가 벽면에 붙박이로 고정돼 있었다. 천장형 에어컨이 설치됐고 양쪽 구석에선 대형 공기청정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 이곳을 찾은 기자들 사이에서 “일반 민원인이 봤으면 기자들이 혈세를 다 퍼먹는다는 비난이 나오겠다” 는 이야기도 오갔다.

정부 관계자는 “7억3000만원을 들여 만든, 다른 어떤 부처의 브리핑실보다 훌륭한 시설”이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이날 하루 실제 합동브리핑룸을 이용해 본 기자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평가는 “외양만 번지르르할 뿐 실제 언론의 취재 보도활동은 오히려 위축되고 제약이 가해졌다”는 것이었다. 곳곳에서 취재를 ‘방해’하려는 흔적이 보인다는 평가도 있었다.

브리핑실에는 전화가 없다.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언론사가 회사별로 전화선을 깔고 전화도 사다 쓰라’는 논리다. 브리핑제 도입으로 누구나 브리핑을 듣고 기사를 쓰게 하자던 ‘개방형 취재 시스템’은 사라지고, ‘내 돈 내고 내 자리 차지하는’ 고정 출입기자제만 더욱 강화된 것이다.

회사 사정으로 전용 전화를 놓지 못하는 언론사나 자주 출입하지 않는 기자를 위한 전화는 따로 마련할 수 없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앞으로 설치할 예정인 보안문과 보안카드도 취재를 막을 장벽 역할을 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상주 기자 위주로 발급되는 보안카드는 기자의 이동경로가 나타나게 돼 있어 취재활동 침해 논란도 일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정부는 무엇을 위해 거금을 들여 브리핑실을 만들었을까.

나성엽 사회1부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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