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방형남 칼럼]‘짝짓기’ 외교

  • 입력 2004년 5월 19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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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항력(不可抗力)이 있다. 태풍이나 홍수 같은 대규모 자연재해는 인간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자연의 공격은 예상하기도 어렵지만 미리 대비를 한다 해도 인력으로 막기는 힘들다. 해마다 나이를 먹게 하는 세월도 불가항력이다. 뻔히 알면서 속절없이 늙어야 한다. 불가항력이 닥치면 운명이거니 하고 체념하거나 인간의 나약함을 한탄하는 수밖에 없다.

느닷없는 얘기 같지만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 불가항력을 떠올리게 한다. 폭등하는 국제 유가, 중국의 긴축정책, 미국의 금리인상설 등이 사정없이 우리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쇼크’의 연속이다.

저항을 용납하지 않는 불가항력은 아닌 것 같은데 도무지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끊임없이 대책을 마련한다고 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도의 효과도 없는 것 같다. 국내 재력가와 외국인투자자들의 뭉칫돈이 해외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진정한 친구가 없다▼

우리는 왜 이렇게 무력할까. 영락없이 폭풍이 멎기만을 기다리는 조각배 신세다.

한반도 주변 강대국의 움직임도 불가항력을 느끼게 한다. 새로운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과거에는 혈맹이라고 치켜세우던 미국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깊어진다.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앞장서서 한일 양국의 불화를 조장하고 있다.

‘기회의 땅’ 중국은 하루하루 경쟁국이자 위협의 진원지로 변모하는 중이다. 외교통상부 장관이 한번 부도낸 한-러 정상회담을 복원하기 위해 23일부터 모스크바를 방문하지만 집권 2기에 돌입한 ‘21세기의 차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면박이나 당하지 않을지 걱정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친구가 없다.

산적한 숙제를 생각해도 가슴이 답답하다. 북핵 문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지난주 중국 베이징에서 6자 실무회담이 열렸지만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방식의 핵 폐기(CVID)’에는 한 치도 접근하지 못했다. 어느 한쪽이 양보를 해야 하는데 미국도 북한도 그럴 기미가 없다. 시간도 넉넉하지 않다. 미국은 11월 대선이 다가올수록 북핵 문제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임기만료를 앞둔 2000년 말 중동과 북한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그가 이라크를 제쳐두고 북핵 해결을 위해 힘을 쏟을 리는 없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북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아쉬움을 이렇게 피력했다. “(실패로 끝난) 중동 평화를 위해 마지막 힘을 기울이느라 워싱턴에 머무르는 대신 북한에 갈 기회를 잡았어야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북핵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워진다.

▼시급한 정상외교 복원▼

이대로 주저앉지 않으려면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외부에서 오는 충격은 밖에서 막는 것이 상책이다.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난제는 공동으로 풀어야 한다. 이럴 때야말로 동맹이 힘을 주고 공조(共助)가 성과를 낸다. 동유럽국들과 구소련의 발트해 연안국들이 무엇 때문에 다투어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는가. ‘짝짓기 전략’의 가치를 읽은 것이다.

일부 국민의 치열한 ‘미국 때리기’를 따져볼 때가 됐다. 미국이 가면 누가 남는가. 일본인가 중국인가 러시아인가. 대타(代打)가 보이지 않는데 51년간 쌓은 공든 탑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는 없다. 미국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동맹의 폭을 넓히면 된다.

가히 총체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상외교의 복원이다. 대통령 직무정지 두 달은 국내 정치에는 약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외교에는 잃어버린 시간일 뿐이다. 하루빨리 정상외교를 가동해 ‘짝짓기’를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생긴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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