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방형남 칼럼]대한민국의 얼굴

  • 입력 2004년 3월 24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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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시도가 초래한 국내적 충격, 내상(內傷)은 누구나 아는 대로다. 없었으면 더 좋았을 불행으로 인한 고통이 심각하다. 헌법재판소가 판정을 내린다 해도, 총선에서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가려진다 해도 빠른 치유를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처가 크고 깊다. 불행하게도 피해는 내부에만 있지 않다. 대외적 피해, 외상(外傷)은 얼마나 클까.

▼추락한 국가 위신 ▼

사례 1.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기 하루 전인 11일 신임 공관장 23명이 노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장을 받았다. 신임장은 국가원수가 외국 국가원수에게 보내는 대사 발령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임장을 받은 대사들은 한 사람씩 노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주재국 공관에 게시하기 위한 증명사진이다.

신임장을 받고 사진을 찍은 공관장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국회가 표결을 하루 연기하지 않았다면 ‘대통령 권한대행’ 명의로 된 희귀한 신임장을 받을 뻔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불행 중 다행인가.

아슬아슬하게 신임장을 받은 대사들이 속속 부임지로 가고 있다. 주재국 국가원수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열심히 뛸 것이다. 그러나 걱정이 앞선다. ‘권한 정지된 대한민국 대통령’ 명의의 신임장을 받아 든 외국 국가원수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사례 2. 오늘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이 처음으로 청와대에서 공식행사를 갖는다. 그리스 등 5개국 신임 주한 대사로부터 신임장을 제정 받는 행사다. 권한대행이 됐지만 정부중앙청사 집무를 고집해온 고 대행으로선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외교적 격식과 대사들에 대한 예우를 고려했다고 한다.

그래도 장소보다는 사람이 중요할 것이다. 주재국에 대통령이 있으되 대통령이 아닌 권한대행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는 외국 대사들의 심경이 어떨까.

대통령은 나라의 얼굴이다. 헌법도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66조 1항)’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 대통령이 장기간 권한정지 상태에 있는 것은 국가적 불행이다. 대통령의 명예 손상은 국가 위신 추락으로 이어진다. 벌써 노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위한 한-러 협의가 보류됐고 4월로 예정됐던 네덜란드 총리의 방한도 연기됐다.

피해가 어찌 외교 분야뿐이겠는가.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금의 난국은 노 대통령뿐만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수치”라고 꼬집었다. 한 사람에게만 고통을 주는 시련이 아니다. 내상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겠지만 무형의 피해가 큰 외상은 가늠조차 어렵다. 지금쯤 각국은 부지런히 한국에 대한 평가를 조정하고 있을 것이다. 통탄할 일이다.

해법은 무엇인가. 국회에서 탄핵안을 가결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철저히 응징하자는 게 현재의 대세다. 국민의 분노가 총선에 그대로 반영될 듯한 분위기다. 그렇게 총선을 치르고 나면 대한민국의 얼굴은 세수를 한 것처럼 말끔해질까.

▼네 탓인가 내 탓인가▼

2세기 전 프랑스의 장 자크 루소는 “국민은 투표할 때만 주인이고 투표가 끝나는 순간부터 다시 노예로 전락한다”고 말했다. 선각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선거가 끝난 뒤 유권자 신세가 어떻게 되고, 선량들은 어떻게 표변하는지 경험을 통해 잘 안다. 어쩔 수 없이 또 기대를 하지만 이번에는 속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때리기로는 부족하다. 얼굴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우리 모두가 나누어야 한다. 국민 모두가 변하지 않으면 손상된 얼굴은 회복되지 않는다. 나라 안은 물론이고 밖의 시선까지 의식해야 할 높은 자리에 있는 지도층이 철저하게 변해야 한다. 얼굴 자체인 노 대통령의 책임은 더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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