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승련/北, 작은 약속부터 지켜야

  • 입력 2004년 3월 18일 19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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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건 위원장님.

위원장님은 14일 남북 경제협력추진회의 북측 위원장 자격으로 남측에 통지문을 보내셨습니다. “미국의 사주로 촉발된 탄핵 정국에 따른 정치적 혼란 때문에 경기 파주에서 열릴 예정인 남북간 실무자급 회담의 개최가 불가능하다”며 15일 회담장소를 북측 개성으로 바꾸자는 내용이었죠.

남측이 이에 응하지 않아 회담은 결국 무산됐습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며 개인적으로 저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탄핵정국에도 불구하고 남측 상황이 안정적이고 평온하다는 것은 최 위원장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정세현(丁世鉉) 통일부 장관이 18일 지적했듯이 “민주주의는 혼란을 부른다. 우리식 정치가 낫다”고 북한 주민에게 선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북측 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런 ‘몽니 부리기’가 북한의 대외적 이미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해 보셨는지요.

북한 핵문제의 해결만 해도 그 요체는 미국 등 관련국들이 ‘합의가 이루어지면 북한이 이를 제멋대로 깨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눈에 비친 북한의 신뢰도는 어떨까요. 미국 정부가 북한을 불량국가로 지목한 것은 북한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신용을 중시하는 미국에선 신용거래의 상징인 크레디트카드 발급이 여간 까다롭지 않습니다. 은행 잔액이 많다고 무조건 카드를 내주지는 않습니다. 전기 전화 수도사용료 등을 몇 달간 어김없이 지불해 먼저 신용을 쌓아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북측이 탄핵정국을 트집 삼아 약속을 깬 행동은 우리는 물론 미국이 보기에도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북한을 가장 잘 이해하는 통일부 직원들마저 “자신감 넘치던 최 위원장이 자기 이름으로 그런 통보를 했다니…”라며 납득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북측이 남북경협마저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는 상황이라면 더 큰 신뢰가 필요한 북핵 문제의 해결은 요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24일 개성에선 철도 도로 연결을 위한 실무회담이 열릴 예정입니다. 북측도 약속을 지킨다는 점을 보여주시길 기대합니다.

김승련 정치부 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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