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후폭풍]확 바뀐 총선 풍속도…無정책-脫지역-先정당

  • 입력 2004년 3월 18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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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의결이 촉발한 ‘특급 후폭풍’이 총선 풍속도를 180도 바꿔 놓았다. 각 정당이나 후보들의 정책과 인물은 태풍에 뿌리 뽑힌 것처럼 뒷전으로 밀렸고, ‘어느 당 후보냐’가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됐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의 지역기반도 크게 약화돼 열린우리당이 전국 모든 곳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당장 총선을 치르면 열린우리당이 거의 전 지역구를 석권할지 모른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철옹성 같은 지역주의마저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현실 앞에 야3당 후보들은 경악하고 있다.》

▽“정책은 없다?”=“시험은 못 보고 공부만 열심히 하는 상황이다.” 18일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에서 정세균(丁世均) 정책위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2월부터 정책선거를 위해 열심히 준비해 왔고 4대 비전과 15대 핵심공약까지 만들었으나 발표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다”고 말했다.

야당의 사정은 더욱 어렵다. 한나라당 이강두(李康斗) 정책위의장은 “예년 같으면 이맘때 후보들로부터 지역별 공약을 빨리 발표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요청이 아예 없다”며 정책대결의 실종을 전했다. 민주당 정책위의 한 관계자는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를 정치 분야의 대표 공약으로 내놓기 위한 작업을 거의 마쳤지만, 탄핵 정국 때문에 당의 최종 승인을 받지 못해 엉거주춤한 상황이다”고 토로했다.

지역 유권자들도 각 당 정책이나 후보자 공약에는 별 관심이 없다. 충남 천안갑의 한나라당 전용학(田溶鶴) 의원은 “4년 전 선거 때는 동네 앞길을 닦아 달라거나 부도심 공동화를 심각하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탄핵 얘기뿐”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경기 광명을 양기대(梁基大) 후보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탄핵 문제를 거론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탄핵의 부당성을 역설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서울 서초갑 지역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배선영(裵善永) 전 청와대 행정관은 “강남지역이라는 지역적 특성상 탄핵 논란에 싫증난 유권자들이 오히려 무당파층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주의 약화=열린우리당이 영남과 호남, 충청지역 여론조사에서 정당지지율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지역주의마저 무뎌지고 있다. 광주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와, 부산에 출마한 한나라당 후보들은 “인물은 좋은데 당이 나쁘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듣고 있다.

충청 지역에서 자민련도 흔들리고 있다. 충청 지역 언론들이 ‘노 대통령 하야를 원치 않는다’는 김종필(金鍾泌) 총재의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 내용을 대서특필한 것도 자민련에 대한 충청권의 민심 동요를 거꾸로 보여주는 셈이다.


강원 강릉에 출마한 열린우리당 신건승(辛建承) 후보는 “지역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강릉지역에서 열린우리당이 40% 이상의 지지율을 얻고 있다”며 “한나라당 시의원 19명 중 10여명이 벌써 탈당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바닥에서는 ‘한-민 공조’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 강북 지역의 한 민주당 후보는 “한나라당측 구의원이 내부적으로 지지를 약속했다. 한나라당 후보가 약한 지역에서는 반노-비노 세력이나 보수 세력들이 민주당 후보를 미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인물보다는 당=열린우리당은 최근 지역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서울 강북 지역의 한 여성후보의 지지도에 깜짝 놀랐다. 인지도는 13%인데 지지도가 55%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사람은 필요없다. 당 보고 찍겠다’는 국민들의 의사가 분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열린우리당 이종걸(李鍾杰) 의원은 최근 경기 안양 출신의 한 인사가 전혀 연고도 없는 경기 북부의 한 곳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들고 와 “내가 1위를 차지했으니 그 지역에 공천을 달라”고 요구해 당황했다고 한다.

서울 강남도 탄핵 후폭풍의 안전지대는 아니다. 특히 민주당이 유탄의 피해자다. 강남갑 민주당 후보인 전성철(全聖喆) 변호사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양강 구도가 형성돼 민주당이 더욱 쪼그라들고 있다”며 “모든 것이 탄핵문제에 집약되고 인물에 대한 비교 평가는 사라진 측면이 있다. 선거 막판까지 이런 양상으로 가면 국민 전체가 후회할 것이다”고 우려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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