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현진/`민경찬 펀드` 통하는 사회

  • 입력 2004년 2월 3일 19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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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사돈인 민경찬씨가 653억원의 자금을 모금했다는 사실이 각 일간지에 처음 보도된 지난달 29일. 관련 기사를 쓴 본보 L기자는 누군가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민씨의 투자회사에 자금을 투자하고 싶은데 민씨의 연락처를 알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기자는 이를 전해 듣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대통령 친인척에게 돈을 맡겼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음을 알 텐데 과연 누가 맡기겠느냐”는 한 투신사 임원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에도 L기자는 민씨의 연락처를 묻는 또 다른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는 그렇겠거니 하고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이후 지금까지 ‘민경찬 펀드’ 사건을 취재하면서 이처럼 상식을 벗어난 투자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 부동산개발업자는 “부동산 등으로 큰돈을 번 사람들은 항상 돈을 ‘튀길’ 방법을 찾고 있다. 권력에 가깝다 보니 부동산 개발 정보 등에 빠르지 않겠느냐는 기대감 때문에 이런 사람에 대한 소문은 금방 퍼진다”고 귀띔했다. 민씨 스스로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하면 안 될 것도 되게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투자자들일수록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속성이 강하다. 실제로 ‘민경찬 펀드’와 관련된 보도가 나간 지 엿새가 지난 이달 3일까지 단 한 명의 투자자도 금융감독원에 이 펀드에 대해 문의하지 않았다. 민씨는 신해용(申海容) 금감원 자산운용감독국장과의 면담 때 “10원도 보상 못 받아도 전혀 후회하거나 원망하지 않을 사람들로 (투자자가) 구성돼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민씨가 ‘대통령의 사돈’이라는 점을 악용했는지는 반드시 밝혀야 한다. 아울러 ‘민경찬 펀드’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우리 사회의 풍토도 이런 펀드가 나올 수 있었던 한 원인이 아니었는지 짚어봐야 한다.

‘정치적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대통령 친인척=투자 고수익’이라는 서글픈 등식(等式). 이번에 이를 뿌리 뽑지 않는 한 ‘제2, 제3의 민경찬 펀드’가 나올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다.

박현진 경제부기자 wi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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