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물을 헌법적 권한없어”…9명중 4명 소수의견 주목

  • 입력 2003년 11월 27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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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과 관련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27일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지만 이번 결정 과정에서 제시됐던 소수의견이 주목을 끌고 있다.

전체 9명의 헌재 재판관 중 4명이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의 재신임을 묻는 것이 위헌’이라는 의견을 낸 것. 이는 노 대통령이 앞으로 국민투표안을 공고하고 다시 헌법소원이 제기될 경우 위헌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 재판관은 대통령의 국민투표 제안 발언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헌법에 위반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대통령의 국회 발언이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명백한 의사결정을 대외적으로 표시한 것에 해당하기 때문에 국민투표안의 공고가 아직 없다고 하더라도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한다는 것.

이들 재판관은 이 사건에서 문제는 ‘국민이 대통령의 신임 여부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 헌법상 가능한가’의 여부가 아니라 ‘대통령이 국민에게 그 신임을 묻는 투표를 실시할 헌법상 권한을 가지는가’라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대한 이들의 결론은 대통령은 국민투표를 통해 자신에 대한 신임을 물을 헌법적 권한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이미 지난 선거를 통해 획득한 자신에 대한 신임을 국민투표의 형식으로 재차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제를 헌법이 허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

이들은 “우리 헌법은 국민투표의 대상을 명시적으로 ‘정책’에 한정함으로써 국민투표가 역사상 민주주의 발전에 해악을 끼친 신임투표가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선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들이 위헌이라고 판단하면서 헌법적 근거 이외에 세계사적, 역사적 근거를 든 점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들 재판관은 국민투표와 관련한 의견에서 “역사적으로 볼 때 다수 국가의 집권자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국민투표를 이용한 사례가 허다했다”고 지적했다.

과거 국민투표가 권력자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남용된 사례가 있는 만큼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제는 구체적이고 특정한 정책과 연계돼 실시돼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견해다.

특히 헌재 공보관실이 보도자료를 통해 “신임 국민투표의 위헌 여부라는 본안 문제에 관한 헌재의 판단은 내려지지 않았지만 국민투표안이 정식으로 공고될 경우 결론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언급한 부분도 관심을 끈다.

한편 윤영철(尹永哲) 헌법재판소장 등 5명은 대통령의 국회 발언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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