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신임, 결국 ‘정치적 타협’인가

  • 입력 2003년 10월 17일 18시 28분


코멘트
‘재신임 승부수’ 너무 가벼웠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재신임 국민투표 문제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다녀온 후 정당 대표들과 만나 정치적으로 타결짓겠다고 밝혔다.

우리는 이미 재신임 국민투표가 작금의 국정 난맥상을 해소하는 방안으로서는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측근 비리로 도덕성이 훼손돼서라지만 국민투표라는 극단적인 처방까지 동원해야 할 사안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재신임을 묻기에 앞서 국정쇄신책부터 내놓는 것이 순리라는 점도 강조했다. 위헌 소지도 물론 컸다.

정치권의 협의과정에서 어떤 결론이 날지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통령도 말했지만 모든 정당이 반대한다면 이를 강행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정당 대표들은 재신임 국민투표 공방을 중지하고 다른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

우리는 노 대통령이 먼저 국정쇄신의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본다. 집권 8개월 만에 대통령직을 걸고 재신임을 묻지 않을 수 없게 된 원인을 따져보고 대책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청와대와 내각의 인적 쇄신도 단행해야 한다. 그런 후에 내년 4월 총선에서 심판을 받든지 아니면 그 전이라도 정치권의 합의 아래 정식으로 재신임을 묻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재신임 국민투표를 한다면 현행 헌법 아래서 그것이 합헌(合憲)인지부터 헌법재판을 통해 명확히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 제의가 일회성 깜짝 쇼나 이벤트로 끝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노 대통령은 재신임 제의 자체만으로도 지지 세력의 결집, 자신의 도덕성 과시, 국정 혼란의 책임 전가와 같은 효과를 얻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로 인해 국민이 일시적으로나마 불안해했다는 점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국정을 끌고 가도 되는지 묻고 싶다. 야당이 반대하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나 ‘재신임 카드’는 애초부터 경솔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