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민혁/‘盧 당적’ 한나라당의 이중잣대

  • 입력 2003년 9월 30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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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당적을 이탈해 여야 등거리 상태에서 국정운영을 해야 한다”(최병렬 대표, 9월 5일 청와대 5자회동에서)

“대통령이 신당으로 가서 이것은 ‘노무현(盧武鉉)당’이라고 만천하에 보여주는 것이 타당하다.”(한나라당 최 대표, 9월 30일 국감대책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당적을 둘러싼 한나라당의 입장이 한 달이 채 안돼 180도 달라졌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노 대통령을 향해 민주당을 탈당해 초당적 국정운영을 할 것을 주문해 왔다. 그러다가 노 대통령이 정작 민주당을 탈당한 29일부터는 당 지도부가 앞장서 신당 입당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당의 공식 논평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박진(朴振) 대변인은 9월 7일 논평에서 “국정에 전념하기 위해 당적을 포기하면 초당적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8일에는 “순수한 동기로 당적을 버리고 일체의 정치행위에서 손을 떼야 할 것”이라며 거듭 ‘무당적’을 요구했다.

그러나 29일부터는 연거푸 3편의 논평을 내고 노 대통령의 ‘신당 입당’을 강권하다시피 하고 있다. 박 대변인은 29일 “노 대통령은 친DJ 여당인 민주당의 당적을 포기한 만큼 즉각 친노(親盧) 여당인 통합신당에 입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30일 논평에선 “지체 없이 통합신당에 새 둥지를 틀어야 마땅하다”고 몰아붙였다.

물론 한나라당은 신당 입당 요구에 대해 ‘위장(僞裝) 무당적’보다 대통령 자신이 만든 당의 당적을 갖고 정직하게 책임정치를 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당초 무당적 요구는 신당을 만들지 말라는 데 중점을 둔 것이었던 만큼 ‘사정변경의 원리’가 적용돼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아무래도 ‘정략적 전술적 변신’이란 느낌이다.

실제 30일 오전 당직자 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한 핵심 당직자는 당론 변경의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솔직히 당내 회의에서도 당의 입장을 번복하는 게 군색하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신당에 대해 노무현당이라는 공세를 펴기 위해선 노 대통령이 당연히 입당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본심을 털어놓았다.

물론 ‘정치는 생물(生物)’이란 말처럼 정치판에서 상황이 바뀌면 당론이 바뀔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 야당으로서 납득할 만한 논리도 제시하지 못한 채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국민의 눈에는 ‘공론’보다 ‘정략’을 앞세우는 구태정치로 비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되새겨야 할 것 같다.

박민혁 정치부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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