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라인하트 드리프테/'북한 설득' 중-러의 역할

  • 입력 2003년 9월 17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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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6자회담은 다음 회담과 관련해 혼란스러운 인상을 남겼다. “장래 회담은 의미가 없으며 핵 억지력에 의지하겠다”는 북한의 발표는 실망스러웠다.

한국 일본 중국은 미 행정부의 강경정책에 찬성하지 않을 뜻임을 명확히 했다. 미국과 달리 이들 국가는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해 북한에 더 많은 것을 제공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또 경제 제재로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길 바라는 미 행정부의 희망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핵무기나 서울 공격 등 군사적 수단을 쓰지 않는다 해도 난민 유입이나 대량살상무기 수출로 외부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심각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붕괴된다면 외부 세계는 더 심각한 피해를 막고, 북한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야 할 것이다.

베이징 6자회담을 통해 북한 정권은 여전히 외부세계의 도움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남북이 철도 개통을 논의하는 동안 베이징의 일본대표들은 북한이 곧 피랍 일본인 가족에 대한 자신들의 요구에 응할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북한은 또 정치적 분위기 때문에 3월에 금지했던 일본인 관광객 입국을 다시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피랍 일본인 가족의 일본 송환을 요구하는 자국민을 만족시키지 않고는 북한에 어떤 원조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북한은 잘 알고 있다. 북한은 또 외교관계 정상화로 일본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크다는 것도 알고 있다.

가장 긍정적인 발전은 6자회담을 가능하게 했던 중국의 적극적인 왕복외교(shuttle diplomacy)다. 중국은 정치적 경제적 전략적 이해관계가 북한문제의 평화로운 해결에 달렸다는 통찰을 바탕으로 실질적 결과를 이끌어냈다. 1994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본부를 베이징에 설치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거절했던 사실을 감안하면 중국의 태도가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엄청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인 중국이 쉽게 과거의 수동적 위치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서방세계는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경제 회복에 완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급속한 경제침체와 인도적 지원 축소로 북한은 절망적인 상태이다. 북핵 문제와 피랍 일본인 가족 문제에 대해 북한이 의미 있는 양보를 한다면 중국과 러시아가 적극 참여하는 경제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중국은 특히 사회주의 경제에서 자본주의 경제로 이행한 귀중한 경험이 있다. 더구나 북한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경제지원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서방은 ‘남남(South-South) 경제원조’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남남 경제원조’는 선진국이 원조 대상국보다 약간 잘 사는 나라를 통해 원조하는 방식이다. 일본은 말레이시아 같은 동남아 국가를 통해 아프리카 국가에 원조를 제공하는 등 상당한 경험이 있다. 북한은 정치 경제적 민감성과 특이성 때문에 ‘남남경제원조’ 방식이 더욱 필요하다. 이 방식은 중국의 참여를 증진시킬 것이다.

김정일 정권은 언젠가는 끝을 보겠지만 그 시기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언제 어떤 상황에서 몰락할지에 대한 정보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중국과 서방세계는 북한 문제의 평화로운 해결을 위해 현재의 기회를 최대한 살려야 한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더 깊게 참여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고, 북한이 외부 원조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지금의 기회를 헛되이 흘려버려서는 안 된다. 다른 방법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거나 인적 경제적으로 지불해야 할 대가가 커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해 당사국들이 동북아 안보를 위해 북한사회를 회복시키는 데 돈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비용이 조금이라도 덜 들고 아직은 관리가 가능할 때 시도하는 게 좋다. 유럽연합(EU)은 상당한 원조와 인도주의 프로그램으로 지원할 것이다. 북한은 야비한 정권을 갖고 있지만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과 달리 공공질서를 유지할 수 있고, 외국인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으면서 주민에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라인하트 드리프테 영국 뉴캐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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