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행자 해임안 가결 이후]野 “명분 충분…밀어붙이겠다”

  • 입력 2003년 9월 4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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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강공▼

한나라당은 김두관(金斗官)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건의안 가결 이후 대여(對與) 공세의 고삐를 바짝 죄기 시작했다. 초점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맞춰졌다.

한나라당은 김 장관 이전 역대 국무위원 해임건의안 처리 과정에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전례가 없다는 점을 공세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노 대통령이 해임건의안을 거부할 경우 ‘의회정치에 대한 도전’이란 역풍(逆風)을 맞을 것으로 자신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런 기류를 반영한 듯 최병렬(崔秉烈) 대표는 4일 상임운영위원회의에서 “(노 대통령이 해임건의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 당에선 헌법을 지키기 위해 비상한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최 대표는 ‘비상한 대응’의 의미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청와대의 대응을 지켜보며 공세 수위를 높여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고 당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당 일각에선 대통령에 대해 직접 탄핵소추를 내는 ‘극한 방안’도 거론되고 있으나 정기국회 개회 중임을 감안해 국회를 통해 파상적인 대여 공세를 펼치는 안 등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다. 최 대표가 이날 ‘대통령측근 비리조사특위’ 등 4개 특위를 직접 주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한나라당의 이 같은 강공 기류의 바탕엔 해임건의안 문제와 관련해 ‘공이 이젠 청와대로 넘어갔다’는 나름대로의 현실 인식이 깔려 있다.

해임건의안이 일단 국회에서 가결된 이상, 초점이 해임건의안 공세의 타당성 여부를 넘어 국회의 ‘총의(總意)’에 대한 대통령의 대응 여부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임건의안 제출의 부당성을 비난하던 여권의 대야(對野) 공세의 날도 무디어질 수밖에 없다고 당 지도부는 보고 있다.

한 고위당직자는 “노 대통령이 해임건의안 가결 후 즉각 거부권 문제를 거론하지 못한 것도 명분에서 밀리는 점을 자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해임건의안 거부는 곧바로 경색정국의 책임을 여권이 져야 한다는 점을 청와대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최 대표가 전면에 나서서 공세를 주도하는 배경엔 전날(3일) 해임건의안 처리 과정에서 찬성 당론을 거부한 김홍신(金洪信) 의원을 제외하면 이탈 표 없이 표 단속에 성공한 자신감도 작용한 듯하다.

다만 당 지도부는 지나친 강경일변도의 대응이 몰고 올 비판적 여론을 의식해 경제살리기를 위한 정책대안 제시와 민생 입법을 주도하겠다는 방침이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청와대 長考▼

김두관(金斗官) 행정자치부 장관의 해임 문제를 놓고 청와대가 장고(長考)에 들어갔다.

청와대는 4일에도 한나라당이 김 장관 해임건의안을 단독 처리한 것은 부당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날 오전 열린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회의에서도 노 대통령은 직접 “부당하다”고 말했고, 참모들도 대체로 이에 동조했다. 유인태(柳寅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한술 더 떠 “이장 출신이 장관이 된 것에 대한 다수당의 횡포다. 한나라당이 해임시키라고 해서 다 해임하면 어느 장관이 제대로 일하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국회 의결을 일축하는 것 역시 곤란하다는 신중론도 대두됐다. 이날 회의에서 일부 참모들은 “해임건의가 부당한 것은 명백하지만 국회의 의사를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청와대의 고민은 김 장관 해임 문제가 시기적으로 복잡한 상황에서 이슈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김 장관 해임을 거부할 경우 당장 국회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반발해 갓 개회한 정기국회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기 때문이다. 또 내년 총선을 앞두고 사실상 마지막 국회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이번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내년도 정부 예산과 각종 법안들이 ‘올 스톱’ 되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이달 말로 예정된 윤성식(尹聖植)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와 임명동의안 표결도 걱정되는 대목이다. 김 장관 지키기에 연연하다가 감사원장 임명동의안까지 부결될 경우 자칫 정권 자체가 ‘움치고 딸싹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그만큼 청와대와 정부 입장에서는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의 협조가 아쉬운 상황이다.

그렇지만 ‘김 장관 퇴진 카드’ 역시 쉽게 선택하기 어렵다는 게 청와대측의 설명이다.

한 핵심 관계자는 “해임건의를 받아들여도 곤란한 지경에 빠질 수 있다. ‘지방분권 추진’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 김 장관이 낙마하면 큰일이다”면서 “정면 돌파를 해야 하지만 묘책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윤태영(尹太瀛) 청와대 대변인도 “노 대통령이 평소 잘 쓰지 않는 표현인 ‘고심’이라는 말을 오늘 했다. 지금으로서는 ‘50 대 50’이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청와대는 김 장관 해임건의를 거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론을 등에 업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유 정무수석이 연일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다분히 ‘여론몰이’를 위한 의도적인 발언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당장은 해임건의를 수용하지 않는 ‘유보론’을 내세워 시간을 벌겠다는 게 청와대의 복안인 듯하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내각을 다시 짜 내년 총선 출마자를 정리하면서 문제를 자연스럽게 푸는 ‘부분개각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민주당 고심▼

“한나라당이 당론(黨論)으로 모든 걸 밀어붙이는 게 문제라면, 민주당은 당론조차 제대로 모으지 못하는 게 문제다.”

3일 김두관(金斗官)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처리될 때 강온론 사이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던 민주당이 4일 ‘건의안 거부권’ 문제에 대해서도 결집된 당론을 보이지 못하자 당내에선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문석호(文錫鎬)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이번 해임 건의안 처리는 거대야당인 한나라당의 오만과 독선일 뿐이다. 정치안정과 경제회복을 바라는 국민들과 함께 한나라당의 구태 정치에 대하여 단호하게 맞서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는 내용이지만 당내에선 그에 대한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조순형(趙舜衡) 고문은 “해임건의안을 수용하기 싫은 노 대통령의 심정은 이해한다”면서도 “그래도 국회의 해임건의안이 단 한번도 거부된 적이 없다는 전례를 무시하면 더 큰 정 치적 부담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함승희(咸承熙) 의원도 “이번 건의안이 한나라당의 당리당략용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적법한 절차를 거쳐 국회에서 의결된 이상 대통령은 그것을 수용하는 게 법리상 옳다”고 말했다.

한 핵심당직자는 “해임건의안을 거부하면 ‘대통령의 국회 무시’가 새 쟁점이 된다. 한나라당의 ‘거야 횡포’를 부각시키기 위해선 건의안을 수용하는 게 오히려 낫다”는 의견을 펴기도 했다.

그러나 내무부 장관 출신인 강운태(姜雲太) 의원은 “해임건의의 정당한 이유를 갖추지 못한 이번 ‘건의안’은 원인 무효 결정과 같다”며 ‘거부권 행사’를 지지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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