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허영/北 생트집 왜 감싸나

  • 입력 2003년 8월 28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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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유니버시아드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하나’이면서도 사실은 ‘둘’인 남과 북의 관계는 오늘 우리가 직면한 엄연한 현실이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자유와 인권의 중요성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아 온 우리 국민이 헌법에 보장된 의사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정부 과잉 편향대응 후유증 커 ▼

바로 이 공기와도 같은 의사표현의 자유가 ‘우리는 하나’라는 정치적인 환상과 정부의 그릇된 정치적 판단 때문에 비판과 도전의 대상이 되는 것이 오늘 우리의 서글픈 현실이다.

잘 훈련된 미모의 ‘응원단’을 앞세우고 대구에 와 입만 열면 ‘민족’ ‘통일’ ‘우리는 하나’ 등 정치색 짙은 구호를 외쳐대는 북한 선수단을 과연 순수한 체육행사 참가자들이라고 볼 수 있는가. 우리 시민단체의 광복절 행사에 대한 사죄 요구에서부터 최근의 잇단 트집에 이르기까지, 북한이 대구대회에 참가한 진의가 아리송한 마당에 북한의 정치체제에 대한 일부 시민의 비판만을 크게 문제 삼는 당국의 태도는 온당한 처사가 아니다. 더욱이 문화관광부 장관의 브리핑 내용은 과잉 편향 대응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북한 선수단의 철수 위협이 현실화된다 해도 정부는 의연하게 우리의 헌법적인 가치를 지키는 쪽에 무게를 두었어야 한다.

북한의 트집과 과잉 반응에 일일이 정부까지 나서서 달래고 대응할 일은 아니다. 정부의 대응으로 북한 선수단의 계속 참여를 얻어냈다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도 크다. 무엇보다 우리가 애써 가꾸고 지켜 온 자유민주주의의 다원적인 가치가 혼란스러워졌다. 문화관광부 장관의 말대로 유니버시아드를 원만히 마쳐야 한다. 앞으로 동계올림픽 등 국제대회도 유치해야 한다. 그리고 체육행사에서 정치적 의사 표현은 자제하는 것이 옳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관을 훼손하지 않고 이뤄져야 한다. 유니버시아드의 원만한 끝맺음을 위해 우리의 귀중한 가치를 희생할 수는 없다. 여러 나라 손님을 청해 놓고 집안잔치인 양 북한만을 의식해 북한측의 트집에 과잉 대응하는 정부 당국의 처신이 국제사회에 이상하게 비쳐져 오히려 국제대회 유치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스포츠와 정치는 분리하는 것이 좋지만 국제대회는 그 장소 선정에서부터 정치와 전혀 무관할 수 없다.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남북한 선수들이 함께 입장한 것 그 자체가 이미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다. 유니버시아드는 시상식에서 국가를 연주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대회장에 펄럭이는 참가국들의 국기가 정치적인 색채를 갖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스포츠 행사를 주관하는 단체가 지나치게 정치색을 내보이는 것은 금물이지만, 체육행사장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신성한 기본권 행사다. 따라서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국가는 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이창동 문화부 장관은 국민의 기본권 행사로서 의사표현의 자유와 스포츠행사 주최자의 정치색 탈피의 필요성을 혼동한 것 같다. 체육행사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정당한 정치적 의사표현을 보호하는 것은 그보다 몇 곱절 더 중요하다. 따라서 정부의 무리한 법 적용으로 의사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것은 법익의 균형성을 크게 잃은 것이다.

▼ 의사표현의 자유 막는 일 없어야 ▼

또 북한에 끌려가는 정부의 대응으로 오히려 보수진영을 자극하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예고된 보수진영 집회가 그 결과인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이념적인 ‘남-남 갈등’이 북한의 트집과 정부의 과잉대응으로 더 심화된다면 사회통합이라는 통치목표는 허황한 꿈이 되고 말 것이다. 북한이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도 대한민국의 국민이 숨쉬고 있는 자유의 공기를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내가 인정받기 위한 불가결한 전제 조건이다. 북에서 체질화된 공산체제와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을 우리 대한민국 국민에게까지 강요해서는 안 된다.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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