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엽/노무현 시스템과 매트릭스

입력 2003-06-22 18:24수정 2009-10-10 16:11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미래 디지털 사회를 배경으로 인간 실존에 대한 성찰을 담은 영화 ‘매트릭스 2 리로디드(The Matrix Reloaded)’는 컴퓨터와 인간의 싸움을 그리고 있다. 매트릭스는 인간의 머릿속에 가상현실을 심어 인간 사회를 통제하는 컴퓨터 시스템이다. 그 가상현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석을 빌리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다. 이에 저항하는 이들은 그 허구를 깨달은 ‘소수’ 인간들.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메시아로 나오지만 그도 매트릭스 시스템의 일부일 뿐이고 진짜 메시아는 인간의 자유 선택(Choice)이라는 메시지가 이 영화에 있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만 350만명이 봤다.

이 영화를 네 번 봤는데, 보면 볼수록 노무현(盧武鉉) 정부가 ‘개혁’과 함께 가장 자주 쓰는 말인 ‘시스템’이 떠오른다. 그 시스템이 매트릭스처럼 유독 ‘코드 일치’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매트릭스’처럼 ‘코드’를 기준으로 안팎을 구분하는 시스템일수록 그것은 설계자를 위해서만 봉사하며 코드가 다른 구성 요소에 대해서는 적대적이다.

‘신취재 시스템’ ‘오보와의 전쟁’ 등 현 정부의 ‘대(對)언론 시스템’이 그렇지 않은가.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동아 조선일보 등 코드가 다른 비판 신문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반면 방송에 대해서는 우호적이다.

참여를 표방한 국민 추천 인사 시스템도 그렇다. 누가 얼마나 추천받았는지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이 시스템은 코드 일치 인사들을 기용하는 데 이용된 흔적이 짙다. 수십명의 인사를 추천받고도 청와대측의 개입 등 논란이 벌어졌던 KBS 사장 인선이 그 사례다. 당시 한 KBS 이사는 “결과적으로 보면 국민 추천은 명분이었고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며 시스템의 외관보다 시스템의 의도를 지적했다.

노 대통령이 최근 공무원을 대상으로 벌이고 있는 일련의 특강은 정부 시스템의 속성을 잘 드러낸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각 부처에 공식 비공식의 개혁 주체 조직을 만들겠다”며 “국정 방향과 반대로 가거나 안 가는 사람, 옆길로 가는 사람은 용납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나중에 농담이었다고 했지만 “줄을 서라”고까지 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이 코드 일치의 구성원들로만 국정 운영 시스템을 만들려 한다”는 지적이 인 것은 이미 보도된 대로다.

그러나 시스템의 성공 열쇠는 코드가 다른 이들도 수용하는 통합이라는 게 사회학자들의 견해다. 사회학자 탈콧 파슨스도 사회시스템이론에서 통합 기능을 강조했다. 일반시스템이론의 출발점부터가 학문간 교류의 단절을 극복하기 위한 통합 체계를 세우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 정부의 시스템은 시스템의 기본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 2 리로디드’로 다시 돌아가보자.

이 영화에서 매트릭스를 만든 설계자(Architect)는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려 했으나 시스템 내 불규칙성(Anomaly·변칙)을 피할 수 없었다. 그 불규칙성은 바로 인간의 자유 의지가 촉발하는 선택이다. 네오도 “문제는 선택”이라며 설계자가 예정해놓은 길을 거부한다. 네오는 선택을 배제한 단일 코드의 매트릭스는 애초부터 불가능할뿐더러 갈등을 유발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안티 시스템인 것이다.

‘매트릭스’는 영화이지만 정부 시스템은 현실이다. 영화는 안보면 그만이지만, 정부 시스템은 안볼 수도 없고 우리가 벗어날 수도 없다. 노무현 정부에 통합의 시스템을 위한 노력을 거듭 요망한다.

허엽 문화부차장 heo@donga.com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