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동우/盧대통령의 언론 계산법

  • 입력 2003년 6월 15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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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정오 경기 수원시 아주대학교 팔달관 309호 강의실에서는 이 학교 석좌교수인 장원호 박사의 고별강연이 열렸다. 미국 미주리주립대학의 저널리즘 스쿨에서 최초의 외국인 교수로 30여년 재직하며 부학장까지 지낸 원로 언론학자인 그는 2000년 미주리대를 정년퇴직한 직후 아주대의 초빙을 받아 그동안 커뮤니케이션 이론 등에 대한 강의를 해왔다. 이날 20여명의 교수를 포함해 수많은 학생들이 그의 마지막 수업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이날 강의의 화두를 커뮤니케이션 이론 중에 나오는 ‘날리지 갭(knowledge gap)’ 이론으로 풀어나갔다. 이 이론은 원래 신문을 보는 사람과 안 보는 사람간의 지식 및 정보의 격차가 빈부의 격차처럼 사회의 통합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게 요지였으나 요즘은 어떤 종류의 매체를 보는가에 따라 세상을 보는 인식의 차이가 크게 발생한다는 이론으로 발전했다.

장 교수는 인터넷으로 필요한 뉴스를 찾아보는 젊은층과 종이신문을 주로 보는 노장년층의 세상을 보는 시각에 존재하는 날리지 갭을 지적하면서 세대간 인식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사실을 서로 인정하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 강의를 마지막으로 교단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가는 그는 이날 강의 마지막 부분에서 잔뜩 목이 메어 있었다는 게 한 참석자의 전언이다. 평생을 신문과 방송에 대한 강의를 해온 노언론학자의 마지막 강의가 우리 사회의 소통 부재 문제였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요즘 우리 사회는 온통 소통 부재와 격차투성이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둘러싼 갈등이 그렇고 대북송금 특검의 조사범위에 대한 대립 또한 그렇다. 바로 날리지 갭이 존재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인식의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러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13일 국세청 간부들을 상대로 한 특강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노 대통령의 이날 강의는 평소 그의 스타일대로 거침이 없었다. 언론 관련 부분이 특히 그렇다. 그는 “신문을 보면 열 받칠까봐 요즘은 잘 안 본다”며 “많은 언론이 비판, 비난으로 흔들겠지만 꿋꿋하게 간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 화법의 특징은 직선적이고 진솔해 보인다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열성적이거나 감성적인 지지자에게서는 큰 박수와 동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의 논리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의견을 모두 ‘흔든다’거나 ‘공격한다’로 치부해 버리고 아예 무시해 버린다는 점이다. 그러니 비판자들은 그러한 자세까지 비판하게 되고 대통령 본인은 그 비판 역시 악의적인 것으로 치부해 더 무시하거나 반격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바로 날리지 갭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문제들이다.

필자는 가끔 노 대통령이 스스로를 현직 대통령이 아니라 아직도 특정 정당의 대통령후보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특히 특정 언론이 자신을 악의적으로 공격했으나 타협하지 않고 맞공격을 하여 성공했다며 “내 방식이 옳았다”고 말할 때가 그렇다. 아마 대통령은 후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요 언론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는 게 전체 국민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는 오히려 유리하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국정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후보 때나 통하는 계산법일 것이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국민들이 비판언론을 되받아쳐 공격하는 그의 태도에 박수를 보내기보다는 언론이 제기하는 비판 내용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그가 이제는 국정 전반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 집권 100일이 지났으니 더 이상의 편가르기식 정치나 이른바 코드맞추기식 국가경영은 접어두고 생각과 시각이 다른 사람들도 인정하고 손잡고 같이 가는 정치를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닐까. 언론과 국민은 상호이해와 포용의 대상이지 결코 싸워 이기거나 극복해낼 대상은 아닌 것이다.

정동우 사회1부장 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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