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영해/왔다갔다 '대통령비서 강령'

  • 입력 2003년 5월 23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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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부패방지위원회가 공직자들의 직무관련 접대 범위를 규정한 ‘공무원 행동강령’을 발표했을 때 대통령비서실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강령은 대표적 모범 사례로 꼽혔다.

청와대의 강령은 사실 획기적일 정도로 엄격한 것이었다. 직무관련자를 ‘모든 국민’으로, 직무관련 공무원은 ‘모든 공무원’으로 규정한 데다 청와대 직원이 이들과 식사할 때는 1인당 2만원 한도를 넘지 못하도록 못 박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외 접촉이 많은 민정수석실과 정무수석실 인사보좌관실 총무수석실의 경우는 금액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직무관련자로부터 식사대접을 일절 받지 못하도록 했다. 경조사비도 2급 이상은 5만원 내에서, 3급 이하는 3만원 이하까지만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방미기간 중 발표된 이 강령은 노 대통령이 귀국하자마자 ‘없던 일’이 돼 버렸다는 점이다.

당초 이 안은 대통령총무수석비서관실 소속 행정관이 부방위의 가이드라인을 참고로 작성해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에게 결재를 받은 것. 하지만 노 대통령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청와대에서 공직자 ‘군기 잡듯이’ 큰 소리 치면서 기준이나 강령을 만들어 공무원에게 강요해놓고는 나중에는 흐지부지된다는 이유로 이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의 지시 이후 청와대는 이 문제를 놓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다시 설문조사까지 하는 등 소동을 빚고 있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문 실장이 아주 바쁜 경황에 이 건을 결재했는데 나중에 발표하고 보니 엄청난 내용이 담겨 있어 본인도 깜짝 놀랐다고 하더라. 아마 내용을 충분히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고 전했다.

청와대 직원들은 “10년 전인 김영삼(金泳三) 정부 때 접대 금액인 1인당 3만원보다도 낮은 2만원으로는 어디 가서 돼지갈비에 소주 한 잔 먹기도 어렵다”고 푸념하고 있다. 이런 불만을 감안해 청와대는 접대 금액을 2만원에서 7만원으로 상향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후문이다.

물론 정책이 됐든, 지침이 됐든 시행과정에서 잘못이 발견되면 언제든 바로잡는 것이 행정의 기본이다.

하지만 공무원 행동강령만 해도 수없는 공청회와 여론조사를 거친 데다 청와대 직원의 행동강령은 대통령비서실장의 재가까지 난 사안임을 감안할 때 이번의 소동은 조령모개(朝令暮改)란 비판을 면키 어려울 듯하다.

특히 청와대가 누누이 강조해 온 ‘제도적 시스템’에 의한 국정운영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최영해 정치부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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