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政사령탑 '대통령비서실' 흔들]아마추어들이 혼란 키운다

  • 입력 2003년 5월 21일 18시 41분


국무회의에 앞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왼쪽)과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들. 대통령비서실의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비판론이 적지 않다.-동아일보 자료사진
국무회의에 앞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왼쪽)과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들. 대통령비서실의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비판론이 적지 않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방미 귀국 이후 국정 운영이 급격히 난조(亂調)에 빠져들고 있다. 화물연대의 파업이 가까스로 마무리되자마자 한총련의 5·18 기념행사 저지 파문에 이어 전교조의 연가(年暇)투쟁 선언 등 사회 각 계층과 단체가 일제히 제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정부는 상황수습을 제대로 못한 채 끌려 다니는 양상이다.

이런 국정 혼란은 국정운영의 중추인 대통령비서실의 ‘아마추어리즘’이 결정적 원인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손발 안 맞는 정부와 청와대=지난달 8일 청와대 정책프로세스개선비서관실은 공무원 보수를 내년까지 민간 중견기업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틀 만에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과 그렇지 못한 일반 기업을 똑같이 비교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기획예산처의 반대로 유보됐다.

공무원 전체의 이해가 걸려 있는 민감한 사안을 가장 필요한 예산문제를 검토하지 않고 성급히 발표한 결과였다.

20일 국무회의는 윤태영(尹太瀛) 청와대 대변인과 조영동(趙永東) 국정홍보처장간에 사전협의가 안돼 두 사람이 각자 브리핑에 나서는 바람에 전교조에 대한 노 대통령의 대응태도의 강도가 각각 다르게 전달되는 혼선을 빚었다.

조 처장은 노 대통령의 발언을 적나라하게 소개하면서 전교조에 대한 단호한 대응에 무게를 실었으나, 윤 대변인은 “대통령의 표현보다는 흐름을 전하겠다”며 노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는 데 그쳤다.

비서실 홍보 라인의 전략 부재는 노 대통령의 방미를 전후해 여실히 드러났다.

노 대통령은 이미 방미 직전부터 달라진 대북-대미관을 공개적으로 내비쳤으나, 청와대의 외교-홍보 라인에서는 그러한 변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의 입장이 느닷없이 바뀐 것처럼 비쳐 개혁세력들의 반발을 초래한 데는 홍보전략 부재도 크게 한몫을 한 셈이다.

노 대통령은 3월 말 외국계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펀드매니저 등과의 간담회에서 “미국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모두 빠져나가는 등 경제부터 무너진다”는 간곡한 조언을 듣고 대미관계에서 국익을 최우선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외교-홍보 라인은 그런 전후과정을 설명하지 않은 채 “노 대통령의 입장에 달라진 게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처럼 ‘대통령만 혼자 뛰는’ 양상에 대해 “비서실의 각 라인에 해당 분야의 최적임자가 아니라 ‘코드’만 맞는 아마추어들이 기용됐기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시스템보다는 ‘인치(人治)’=노 대통령의 ‘386 참모’들은 노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다는 이유로 이너서클을 형성해 비서실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국정경험 부족은 시시각각 중요 결정을 내려야 하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특히 노 대통령이 방미 기간 중에 건 전화를 받지 않은 비서실 당직자들을 서면경고조치하자 비서실 내에서는 “평소에도 비서실 당직은 자정에서 오전 1시경에 취침한다. 그 사람들만 재수 없게 걸린 것 아니냐”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전반적인 기강해이 현상이 청와대 내에도 만연돼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이처럼 청와대가 안정된 보좌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면서, 중요한 현안 처리가 특정 라인에 몰리는 인치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노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는 문재인(文在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경우 통상적인 인사검증 및 공직기강 업무 외에 화물연대 파업 문제, 부산고속철 노선변경 문제, 보길도 댐 건설 문제, 한총련 합법화 문제, 부산 선물거래소 이전 문제 등 거의 대부분의 현안을 떠맡고 있다.

비서실이 유기적인 협조 속에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라인에 업무가 쏠리는 현상이지만 오히려 이것이 시스템 구축을 더욱 저해하는 ‘악순환’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평가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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