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2억달러'에 첫 메스

  • 입력 2003년 4월 18일 07시 03분


코멘트
특별검사팀이 17일 본격 수사착수와 함께 박상배(朴相培) 전 산업은행 부총재의 자택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은 첫 번째 수사 대상으로 ‘현대상선의 2억달러 송금’을 선택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북한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진 5억달러 가운데 나머지 3억달러는 조성 및 송금 경위를 입증할 만한 단서가 거의 없는 상태. 그래서 감사원 감사와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등을 통해 나름대로 큰 줄기가 드러난 부분부터 먼저 수사하겠다는 게 특검팀의 복안인 셈.

특히 수사의 ‘신호탄’으로 박 전 부총재를 택한 것은 그가 산은 4000억원 대출을 직접 승인한 당사자로, 대출 과정의 외압 여부를 밝히는 데 핵심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박 전 부총재는 지금까지 “대출 승인과정에서 외압은 없었고, 내가 혼자 처리한 뒤 이근영(李瑾榮) 총재에게 사후보고만 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또 영업상황이 좋은 현대상선이 ‘왕자의 난’ 이후 신용도가 떨어지면서 시중에서 자금을 회수당해 유동성 위기에 몰리는 바람에 부도를 막기 위해 일시적으로 돈을 빌려준 것이라고 해명해 왔다.

그러나 박 전 부총재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는 게 대다수 금융전문가들의 견해다. 대출신청서가 들어오면 검토의견과 상환 계획을 담은 ‘여신심사보고서’를 만들게 돼있는데, 현대상선에 대한 대출신청서는 상환계획도 없이 부실하게 작성됐다는 것. 게다가 보통 1∼2개월 걸리는 대출심사 과정이 불과 하루 만에, 그것도 신용위원회 심사를 거치지 않는 일시당좌 대출 형식으로 이뤄진 점이나 엄낙용(嚴洛鎔) 전 산은총재의 ‘한광옥(韓光玉) 전 대통령비서실장 대출 외압설’ 등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다는 것.

따라서 특검팀의 수사 초점은 박 전 부총재가 4000억원 대출을 혼자 결정했는지, 아니면 다른 압력이 있었는지 밝히는 데 맞춰져 있다. 특히 박 전 부총재가 당시 보고 라인이던 ‘이근영 총재―이기호(李起浩) 대통령 경제수석’과 이 문제를 놓고 얼마나 깊이 논의했는지, 논의 차원을 넘어 이들로부터 지시나 압력을 받은 것은 아닌지가 핵심이다.

이와 함께 특검팀은 현대상선과 현대건설 관련 계좌추적을 통해 4000억원 대출금이 실제 어디에 사용됐는지, 대북송금이 적법하게 이뤄졌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현대측은 4000억원 가운데 2235억원(2억달러)이 북한으로 건네졌고 나머지는 운영자금으로 쓰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계좌추적 결과에 따라서는 북한으로 건네진 돈의 액수가 더 늘어날 수도 있고, 일부가 정치권 등으로 흘러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