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권영준/차베스, 룰라, 盧대통령

  • 입력 2003년 4월 15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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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로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지 50일이 지났다. 참여정부는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을 4대 좌표로 설정하며 출범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부정적 유산과 대외 여건의 악화로 지난 반백일은 그야말로 땜질과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이제 이라크전쟁도 마무리되어 가고 그간 수면 아래 잠복했던 국내 문제들이 연속적으로 노 대통령의 국정수행 능력을 시험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노 대통령은 외환위기 이후 서민경제가 가장 나쁘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어떻게 이 난국을 타개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포퓰리즘 따르다 정치-경제 혼란 ▼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는 반드시 스승이 한 명 있다(三人行 必有我師)’는 공자의 말은 범부(凡夫)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현재 대통령직이라는 막중한 여정을 함께 가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은 바로 노 대통령의 동행자다.

자신의 정권토대인 빈곤층을 내세워 급진적인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으로 무장한 차베스 대통령은 연속적인 좌파 실험을 통해 재계 언론계 노동계 등과 충돌하면서 고립적 외교노선과 철권통치를 강행하고 있다. 그 결과 내전 우려가 사라지지 않고 연이은 파업과 시위로 국가경제는 파탄지경에 이르고 있다. 특히 비판적인 언론을 말살하기 위해 ‘언론과의 전쟁’을 벌여 독재정치를 공고히하면서, 급기야는 외국기업과 투자자본의 철수 도미노가 벌어졌다. 미국의 포드자동차, 코카콜라, 영국의 로열더치셸 등 상당수의 다국적 기업들은 사무실을 폐쇄하거나 사업을 대폭 축소했다.

반면 지난 10일로 취임 100일을 맞은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집권 이후 과거의 포퓰리즘을 과감히 버리고 현실에 맞는 개혁과 합리적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브라질 최초의 좌파 대통령 탄생으로 ‘룰라 쇼크’를 우려했던 서방국가들조차 이제는 ‘룰라 효과’라며 브라질 경제 회생의 기미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룰라 대통령은 자신의 선거공약 중 비현실적인 것은 국민을 설득해 공개적으로 포기를 선언했다. 대신 긴축과 안정 기조를 유지하면서 최대 현안인 빈부격차 해소와 기아퇴치를 위한 연금개혁, 세제개혁 등의 사회개혁에는 적극 나서고 있다. 덕분에 브라질의 대외 신인도는 크게 향상돼 이라크전쟁 중에도 화폐가치가 상승하고 금융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포퓰리즘을 포기하고 경제문제에 정면 대응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재건의 희망으로 인한 국민의 지지가 갈수록 높아져 지난 선거 때보다 훨씬 높은 64%의 지지를 얻고 있다.

▼브라질은 현실적 개혁으로 안정 ▼

이제 노 대통령의 선택은 정해져 있다. 포퓰리즘에 집착하는 차베스 대통령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포퓰리즘을 버리고 개혁적 경제원칙에 충실한 룰라 대통령을 따를 것이냐. 이미 노 대통령은 이라크전쟁에 대한 비전투병 파병과 관련해 소중한 국정경험을 갖고 있다. 시민단체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뇌에 찬 현실인식 하에, 국회에 나가 의원들을 설득한 결정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이로 인해 한미 공조 상의 시행착오가 사라지고 북한 핵문제가 방향을 선회했으며 그 결과 외국인투자자들의 불안도 수그러들지 않았는가.

이제 노 대통령 앞에는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고, 나아가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이 놓여 있다. 이를 위해 노 대통령이 정책을 결정할 때 반드시 짚어보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이런 결정이 일시적 인기는 있으나 경제의 근본에 해가 되는 포퓰리즘적인 것인지 아닌지를 점검해 유혹을 뿌리치는 일이다. 대부분의 정치지도자는 속성상 한번 포퓰리즘적 정치병에 걸리면 벗어나기가 대단히 어렵다. 지난 5년 동안 베네수엘라 국민을 정치적 혼란과 경제파탄으로 몰아넣은 차베스 대통령이 아직도 자신의 모든 행위는 ‘국민의 이름과 지지’로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경영학·경실련 정책위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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