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언론의 관계']관훈클럽 토론회

  • 입력 2003년 4월 11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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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훈클럽과 한국언론학회가 11일 제주 서귀포시 KAL호텔에서 공동 주최한 ‘정부와 언론’ 세미나에서 유재천 교수(왼쪽에서 네번째)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서귀포=연합
관훈클럽과 한국언론학회가 11일 제주 서귀포시 KAL호텔에서 공동 주최한 ‘정부와 언론’ 세미나에서 유재천 교수(왼쪽에서 네번째)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서귀포=연합

《중견 언론인들의 연구 친목 모임인 관훈클럽(총무 이상철·李相哲)과 한국언론학회(회장 김민환·金珉煥)가 공동으로 주최한 ‘정부와 언론’ 세미나가 11일 제주 서귀포시 KAL호텔에서 열렸다. 김민환 한국언론학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최근 언론을 둘러싼 담론이 ‘길바닥 민주주의’하는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우려했다. 이상철 관훈클럽 총무도 “대통령비서실에 이어 정부중앙청사와 과천청사에도 곧 기자 출입이 금지되는 사태는 건국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세미나에선 ‘정부와 언론의 관계’에 대해 한림대 유재천(劉載天) 교수,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에 대해선 한양대 이재진(李在鎭) 교수가 발제를 맡았다. 또 남찬순(南贊淳) 동아일보 심의연구실장, 안병찬(安炳璨) 시사저널 고문, 고학용(高學用)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강명구(姜明求)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박홍원(朴鴻遠) 부산대 교수, 김학순(金學淳) 경향신문 논설위원, 김경호(金敬浩) 제주대 교수, 엄기열(嚴騏烈) 대구대 교수, 박영상(朴永祥) 한양대 교수가 토론에 참여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관▼

▽유 교수=정부의 언론정책은 대통령의 언론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박정희 대통령은 군대생활 도중 형성된 언론관 탓에 언론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관도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몇몇 언론으로부터 갖고 있는 개인적 피해의식으로 인해 신문매체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돼 있다. 또한 신문매체에 대해선 부정적인 반면 방송이나 인터넷에는 호의적인 매체별 ‘그루핑(Grouping)’ 인식을 갖고 있다. 특히 신문 중에서도 ‘족벌’ 또는 ‘조폭언론’이라고 지칭하는 몇몇 영향력 있는 신문에 상당한 적개심을 느끼고 있다. 정부와 언론관계는 견제관계를 넘어서 적대관계로 갈 수도 있다는 우려를 갖게 된다. 한마디로 참여정부의 대(對) 언론정책의 핵심은 ‘시민운동을 통한 개혁’과 ‘언론의 평준화’로 요약할 수 있다. 언론자유에 대한 제한조치가 있을 때 과거엔 언론인들이 하나로 힘을 합쳤는데 요즘엔 언론 내부도 분열돼 단합된 힘이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다.

▽남 실장=노 대통령은 언론기관에 공평한 기회를 주겠다고 하는데, 이것은 언론의 평준화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공평한 기회를 준다는 것은 ‘붕어빵 기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특종이 없는 언론이 어떻게 언론이냐. 관보요, 정부 홍보지일 뿐이다. 정부가 공평한 기회를 줄 필요는 없다. 언론사와 기자의 능력에 따라 경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언론이다.

▽고 전 위원=노 대통령의 언론관이 너무 편향돼 있고, 피해의식이 너무 강하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조폭언론’ ‘언론권력’이란 극단적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문제다. 수백만명의 독자를 가진 언론이 조직깡패에 사로잡힌 노예란 말인가. 언론권력이란 말도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이런 용어는 운동권에서는 가능하겠지만 천근만근의 힘을 가진 대통령의 용어로는 적절치 못하다. 또한 언론사의 ‘소유 경영 분리’를 강조하면서 “보수대변 신문이 시장의 3분의 2, 4분의 3을 차지해 큰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사회의 보수를 한마디로 매도하는 잘못된 인식이다. 현재 경기침체, 북핵, 사스, 이라크전쟁 등 국가적 현안이 많은 데도 언론개혁에만 몰두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박홍원 교수=현재 권력과 언론의 갈등은 제6공화국까지 배제됐던 진보세력들이 주류 정책 메이커로 등장하면서 나타나는 갈등이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정책 영역이 다변화될 것이며, 억압적으로 수행돼 왔던 정책들이 유연성을 갖게 되고 사회 정책의 보호막이 강화될 것이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갈등은 겪어야할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소위 메이저와 마이너 신문, 인쇄매체와 방송매체와의 갈등 등 언론 내부의 갈등도 언론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차원이라고 보면 나쁘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현 정부의 언론정책▼

▽안 고문=기자실의 브리핑제 도입은 필요하고 바람직하다. 신문이건 방송이건 잡지건 정보공개는 공평하게 이뤄져야한다. 그러나 문제는 기자들이 공무원을 자유로이 접촉하는 취재가 차단된다는 점이다.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도 나중엔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엔 기자들과 만나도 괜찮다’고 했다지만, 정보차단의 보완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제도만 서둘러 발표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이 총무=‘기자실 폐쇄’ 자체를 문제삼는 언론은 없다. 많은 언론인들도 ‘브리핑제도’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취재원인 공무원과 접촉이 안 된다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공보관실에 신청하면 사무실에 들어가서 면담할 수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공무원이 나와서 특정장소에서 면담하도록 돼 있다. 이것은 기자들의 취재관행상 불가능한 것이다. 결국 취재원과의 직접 접촉을 막게 된다. 기자는 정부의 발표를 일방적으로 받아 적는 복사기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노 정부의 대언론관계는 언론사에 따라 밀월관계 또는 전쟁관계에 있는 것 같다.

▽강 교수=1987년 민주화 이후 90년대 초반까지 사회적인 영향력을 상실한 집단 중 1위는 군부이며, 영향력을 가장 많이 획득한 집단은 언론이다. 그러나 DJ 정권 아래서 언론과 정부의 갈등이 시작됐다. 축구경기를 중계해야할 언론이 축구선수가 마땅치 않다고 경기장에 뛰어들어간 꼴은 아닌지 되짚어봐야 한다. 언론인들은 역시 경기장 밖으로 나와야 한다. 참여정부의 언론정책은 하찮은 문제에만 집중하는 ‘언론대책’만 있을 뿐, 참여정부의 비전을 담은 언론정책은 없는 것이 안타깝다.

▼언론개혁과 시민운동▼

▽유 교수=정부의 언론정책은 앞으로 언론개혁시민운동단체나 언론노조 및 민변 등이 주장하는 신문의 편집권 독립, 소유지분 제한, 언론시장 독과점 해소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과 궤를 같이할 가능성이 높다. 노 대통령은 “언론 개혁은 정부가 아니라 시민과 언론사 스스로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계속해서 언급한다. 언론개혁 운동단체들이 여론을 형성하고 그 힘에 의해 언론개혁이 제도화되는 것에 대한 기대를 대통령이 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대통령이 시민운동 단체에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고 전 위원=노 대통령은 ‘언론은 언론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제 갈 길을 갈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시시때때로 ‘시민단체’를 들먹이며 언론을 공격한다. 바로 시민단체를 통해 외곽 때리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까지 국회를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 총선에서 다수당을 차지하면 ‘법제화’를 통한 언론개혁을 추진할 것이다.

▼국민의 알 권리▼

▽이 교수=언론은 비록 사적 기업이지만 헌법으로 보호되는 유일한 사적 기업으로서 국민의 알 권리에 근거하여 정부의 기밀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요건을 갖추게 된다.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정보공개법이 존재하지만 국가안보 등의 예외적 조항이 너무 많아 그 실효성이 문제된다. 그럼에도 개인들은 언론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언론은 정보를 가지고 정부와 줄다리기를 할 수밖에 없는 관계에 있다.

▽박영상 교수=언론자유는 ‘개인의 표현의 자유’ 보다는 ‘미디어 프리덤’이 더 중요하다. 미디어 프리덤 없이 개인의 자유를 확보할 수 없다. 언론의 자유는 무엇보다 ‘움직임의 자유’ ‘행동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움직임이나 행동의 자유가 없다면 미디어의 보도 행위에 자유권이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서귀포=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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