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경환/'대통령 측근 의혹' 진실이 해법

  • 입력 2003년 4월 8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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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다마(好事多魔)라더니 그 말이 맞나보다. 실로 극적인 반전 끝에 선출된 노무현 대통령에게 왜 이리도 성가신 일이 많이 생기는지. 안타깝고 아쉽기 짝이 없다. 대통령 직에 취임도 하기 전부터 다분히 감정적인 공격에 시달리더니 청와대에 전세든 후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으니 말이다.

개표가 끝나기 무섭게 ‘컴퓨터 조작설’이 퍼지더니 재검표 사태까지 벌어진 만큼 아직도 새 대통령의 존재 자체를 믿고 싶지 않은 세력집단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된다. 누가 뭐래도 엄연한 국민의 대통령이다. 지난 몇 주 동안 벌어진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격렬한 국론 분열이 한고비를 넘기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나라종금’ 사건을 둘러싼 도덕성 시비다.

▼소수정권 성공의 조건 ▼

누구의 볼멘소리대로 소수정권을 향한 기득권 집단의 조직적인 반발인가, 아니면 정치의 속성이 본시 그렇기 때문인가. 오랜 시일에 걸쳐 형성된 암묵적인 전통이던 새 대통령에 대한 ‘밀월기간’조차 전혀 허용하지 않는 것 같다.

토론과 눈물,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대통령의 수단도 가지가지다. 여러 가지 형태의 파격적인 행보로 동분서주하는 젊은 대통령을 보면서 기대와 함께 불안을 지울 수 없다. 행여 산적한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지레 지쳐버리지나 않을까. 대통령 자신도 답답할 것이다. 이상은 높고 마음은 급한데 제도와 관행은 따라 움직여 주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지극히 실체가 모호하고 유동적인 ‘국민’의 힘에 기댈 수밖에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것이 소수정권의 비애라면 비애다. 그러나 그 비애는 숙명이다.

소수정권이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한 가지. 떳떳하게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다. 도가 지나친 언론의 침소봉대(針小棒大)와 다수당의 정치 공세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원칙과 소신, 그리고 정직하고도 투명한 국정운영이다.

시종일관 겸손한 자세로 반대자와 국민을 설득하고 높은 도덕성을 유지해야만 견딜 수 있다. 그동안 새 정부가 개혁의 이름으로 취한 각종 조치는 오해와 의구심을 자아낼 소지가 있다. 청와대의 기능과 조직을 강화하고 언론의 취재관행을 고치려는 시도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입장에서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이번에 민주당의 국가전략연구소 간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거액을 수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대통령의 수족으로 알려진 안희정씨의 해명은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1999년 벼랑 끝에 내몰린 ‘나라종금’이 회생의 안간힘을 쓰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새삼스럽게도 왜 해묵은 일을 들추어내느냐고 항의할 수도 있다. 과거 우리의 정치관행에 비추어 보면 대수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지인(知人) 사이에 조건 없이 사업자금을 후원하는 것이 미덕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실망할 것이다. 흔히 ‘3김 정치’로 상징되는 금권정치와의 결별을 공식 선언한 새 대통령이 아닌가. 법이 금지하는 ‘대가성’ 유무는 적정한 절차에 의해 가려질 것이다. 대통령이 알고 있었느냐 여부는 사건의 핵심이 아니다.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다. 뒤늦게나마 청와대도 엄정한 진실규명을 주문했고, 강금실 법무장관도 성역 없는 수사를 약속했다. 당분간 국민은 믿고 지켜볼 것이다.

▼도덕성이 생명…원칙 지켜야 ▼

다만 이 시점에 한 가지 당부할 일이 있다. 과연 소수정부가 역사의 승리자가 되는 길이 무엇인가를 숙고해 달라는 것이다. 형사피의자에게는 법이 보장한 묵비권이 있다.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감출 수도 있고 심지어 거짓말을 할 권리도 있다.

그러나 나라의 지도자, 공인은 그래서는 안 된다. 집권당 연구소의 간부가 아니더라도 대통령의 측근은 공인 중의 공인이다. 진실의 고백과 진상의 규명만이 새 대통령과 새 정부, 그리고 국민에 대한 사랑과 충성의 길이다.

안경환 서울대 법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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