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총리후보 인사청문회]"5·17때 왜 20여일간 잠적했나"

  • 입력 2003년 2월 21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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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고건 국무총리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사람들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서영수기자
21일 고건 국무총리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사람들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서영수기자
21일 고건(高建) 국무총리후보자에 대한 이틀째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고 후보자와 증인들을 대상으로 1980년 5·17 당시 행적, 병역면제 경위, 고 후보자의 국정 철학 등을 집중 추궁했다.

특히 5·17 당시 행적과 관련, 일부 증인들은 고 후보자가 대통령정무수석직 사표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고 증언했으나 다른 증인들은 사표를 낸 사실이 없다고 주장, 진위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5·17 행적 논란=

한나라당 임인배(林仁培) 이인기(李仁基) 전재희(全在姬) 의원 등은 “5·17 당시 청와대에서 계엄확대 소식을 듣고 부모님과 상의한 뒤 일단 잠적하기로 결정한 것 아니냐. 국가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의 핵심 참모가 20여일간 무단으로 출근하지 않은 것은 무책임한 처사다”고 주장했다.

고 후보자는 “군정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 운전사를 시켜 비서실에 사표를 전달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고 반박했고 당시 운전사인 신판근씨는 “17일 밤 오후 9시경 최광수 대통령비서실장 부속실에 봉투를 갖다 줬다. 지금 보니 이송용 전 행정관에게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황호항 전 치안비서관도 “당시 사표를 쓴 것을 봤느냐”는 물음에 “도장을 찾아다 주다가 탁자 위에 놓여있는 사직서라고 쓰인 봉투를 봤다”고 말했고, 백형환 전 비서관은 “그날 밤 고 후보자로부터 ‘사표를 냈으니 짐을 정리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신두순 전 의전비서관은 “사표를 낸 적이 없다”고 증언했고 전재희 의원은 당시 최광수 비서실장을 통해 엇갈린 증언의 진위 여부를 가릴 것을 요청했다.

이 밖에 자민련 송광호(宋光浩) 의원은 “5·17은 군정이라고 해서 참여할 수 없다고 했다가 5공 정권에서 농림부 교통부 내무부장관을 지내고 6·10 항쟁 때는 내무부장관으로서 시위대는 야당과 일부 종교인 좌경세력이 연합해 일어났다는 담화문을 발표했다”고 시국관을 문제삼았다.

그러나 김진애 서울포럼 대표는 “공직자로서의 역할과 개인의 소신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그 정도의 조화를 지킨 것만 해도 존경할 만하다”고 엄호했다.

▽국정 철학=고 후보자는 이날 총리의 권한을 최대한 강조하면서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의 각종 정책에는 적극 동조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경제정책과 관련, 노 당선자와의 정책적 견해차를 지적하자 “출자총액제는 이미 시행 중이고 집단소송제 등은 경제계와 논의해서 해나가면 된다. 이제 대기업도 글로벌 시대에 맞춰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시적 특검제와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에 찬성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또 한나라당 임인배 의원이 장관 추천과 관련한 ‘허수아비 총리론’을 언급하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추천된 사람만 갖고 장관 제청을 하는 건 아니다.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장관으로 제청하겠다”고 말했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고건 공격수' 신두순▼

이날 청문회에서는 신두순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이 고건(高建) 국무총리후보자의 1980년 5·17 당시 행적과 관련해 일관되게 고 후보자에게 불리한 증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신씨는 5·17 직후 고 후보의 잠적 의혹과 관련, “사표도 내지 않고 잠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당시 고 후보자가 사표를 내지 않았다고 어떻게 단정하느냐’는 민주당 의원들의 질문에 “최광수 비서실장은 물론 보좌관이나 비서관으로부터도 사표를 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 후보자가 5월 18일부터 출근하지 않아 백형환 보좌관에게 물었더니 ‘밤새 통증이 심해져 입원했으나 병원은 모른다’고 대답했다”고 증언했다.

신씨는 또 한나라당 오세훈(吳世勳) 의원이 ‘그런 위기 때 최규하(崔圭夏) 대통령이 속마음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출근 안 한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 후보자를 의원면직처리해 준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의 행적은 근무지 무단이탈로 해임이나 파면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러나 최 대통령이 젊은이의 미래를 위해 배려를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고 후보자가 ‘5·17을 군정으로 보고 사표를 냈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 “신군부를 혐오한다고 해서 사표를 냈다면 당연히 그 정권에도 출사(出仕)하지 않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일축했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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