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자, 상선과 같은날 北송금…서울-런던 동시 보냈다

  • 입력 2003년 2월 8일 0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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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가 현대건설에 빌려줬다가 받지 못한 1억달러도 북한으로 보내졌을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송금 시점이 2000년 6월9일로 현대상선이 2억달러를 북한에 보내기로 약정한 날짜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현대건설로부터 대여금 약정서를 받기도 전에 송금한 것을 보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현대상선처럼 시간에 쫓겼음을 알 수 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최근 “2001년 5월 하이닉스가 해외주식예탁증서(DR)를 발행할 때 1억달러 대여 사실을 알고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그룹의 최고위층에서 결정한 일로 우리는 모른다’고 대답해 직감적으로 북한에 넘어갔다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이 말은 점점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2000년 6월12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현대상선이 2억달러, 현대전자가 1억달러를 같은 시점에 송금하려 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현대건설, 자금 송금에 직접 개입〓현대건설 심현영(沈鉉榮) 사장은 그동안 “현대전자가 현대건설의 페이퍼컴퍼니인 알카파지(HAKC)에 1억달러를 보냈다는 것은 현대전자의 주장일 뿐 이 같은 거래는 전혀 없었다”고 반박해 왔다.

그러나 하이닉스는 6일 법원에 접수한 소장에서 2000년 6월 현대건설 영국 런던지사에서 알려준 은행계좌로 송금했다고 밝혀 이를 정면으로 뒤집었다.

지금까지는 현대전자 영국현지법인이 직접 알카파지로 보낸 것으로 알려져 심 사장 주장대로 하이닉스가 현대건설 몰래 송금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됐으나 소장을 통해 현대건설이 송금창구로 활용됐음이 분명히 드러난 것.

소장에는 또 “현대건설이 2000년 6월 만기가 돌아온 해외차입금을 갚을 능력이 없어 하이닉스와 현대그룹에 자금지원을 요청했다”고 돼 있다.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현대건설은 사용처를 밝힐 수 있는데도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 차입금 상환이 아닌 다른 용도에 쓰였음을 간접 시인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상선 송금 시점과 일치〓하이닉스가 현대건설로 1억달러를 송금한 시점이 2000년 6월9일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현대상선 역시 6월7일 산업은행에서 4000억원을 빌려 이 가운데 2235억원을 6월9일까지 북한에 보내기로 했었다.

하이닉스가 6월9일 현대건설에 1억달러를 보냈고 현대건설은 이 돈을 페이퍼컴퍼니를 거쳐 북한으로 송금했다면 현대그룹의 전체적인 대북 송금 ‘D-데이’는 6월9일로 미리 잡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중동지역에는 건설사업을 목적으로 한 페이퍼컴퍼니가 수없이 많아 금융당국의 자금추적을 피하기 쉽다는 점에서 현대건설을 개입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하이닉스가 현대건설에 송금하면서 시간에 쫓겼다는 점도 현대상선과 똑같은 양상이다.

현대상선은 2억달러를 세탁할 시간조차 갖지 못해 외환은행 본점 영업부를 통해 송금, 자금 추적의 실마리를 남겼다. 현대전자도 계약서를 받기도 전에 돈을 보내는 등 시간에 쫓겼다. 이는 남북정상회담이 시작되기 전에 송금을 끝내야 하는 절박성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대북 비밀송금은 현대상선 아산 전자 건설 등 현대그룹의 주요 계열사가 모두 개입한 종합작품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더하게 됐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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