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는 多辯家…연수회 50여분간 발언

  • 입력 2003년 1월 28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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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는 다변(多辯)의 정치인이다. 각종 현안에 대해 추상적으로 언급하거나 간단히 대답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 자신도 종종 “말이 많아서 미안하다”고 할 정도로 구체적이고 길게 말한다.

27일 대구에서 열린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전국순회토론회’에 참석한 노 당선자가 이날 하루 동안 공개적으로 한 발언을 글자로 옮기면 1만6000여자에 달한다. 이는 원고지 80여장 분량으로, 언론사 신춘문예 단편소설(70장 정도)보다 길다.

28일 광주 방문에서는 다소 발언이 줄었지만 그래도 1만자가 넘었다.

이에 대해 대통령직인수위 내부에서조차 “구체적 사안을 꿰뚫고 있고, 탈권위적이란 뜻”이란 긍정론과 “최고지도자가 된 만큼 이젠 말을 아껴야 한다”는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김만수(金晩洙) 인수위 부대변인은 “과거 권위적 지도자들은 추상적인 선(禪)문답을 던지고, 그것을 제대로 해석하는 사람이 권력 실세로 인정받는 구태를 즐겼다”며 “노 당선자는 그런 모호한 화법은 생산적 토론에 장애가 될 뿐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6일 민주당 당직자 연수회에서 노 당선자가 50여분간 새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 전반을 자세히 설명한 것도 ‘불필요한 해석과 억측’을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김 부대변인은 덧붙였다.

노 당선자의 현장 중시형 정치도 다변의 원인이란 분석도 있다. 윤태영(尹太瀛) 비서실 공보팀장은 “노 당선자는 여러 현안을 직접 챙기고, 어느 한 대목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적극적 자세 때문에 말이 길어지는 것”이라며 “또 이런저런 정치적 계산을 해서 속말을 감추는 체질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긍정론 못지않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27일 대구 토론회에 참석했던 한 대학교수는 “노 당선자의 (지방분권에 대한) 의지도 좋고 개념도 좋은 것 같은데, 말씀을 장황하게 해서 핵심을 파악하기가 좀 벅찼다”고 말했다.

노 당선자를 수행하는 취재진 사이에서도 “당선자의 발언은 현장에 있는 사람만 듣는 게 아닌 만큼 한두 가지의 분명한 메시지를 간결하게 전달하는 태도가 아쉽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 당선자가 인수위의 각종 회의에 직접 참석해 좌중을 주도하는 데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민주당 조순형(趙舜衡) 의원은 “인수위와의 관계를 분명히 정리해서 (국정 최고책임자인) 노 당선자가 세세한 일에는 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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