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국정원 개혁방향

  • 입력 2002년 12월 2일 18시 25분


《한나라당의 ‘국가정보원 도청 문건’ 폭로를 계기로 국정원 개혁문제가 대통령 선거전의 핵심이슈로 불거지고 있다. ‘국민의 정부’를 자임해온 김대중(金大中) 정권에서 그 어느 때보다 도청의혹이 증폭됨으로써 국정원의 체제와 운용방식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여론이 국민의 공감을 얻어가고 있다. 특히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국정원 개혁을 언급한 데 이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도 2일 ‘국정원 폐지’ 검토의사를 밝힘에 따라 차기 정부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국정원에 대한 수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회창…정치개입 봉쇄 외부감시 강화▼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가 2일 집권을 전제로 밝힌 국가정보원 개혁 방안은 ‘국내 정치 관여 원천 금지 및 국회와 감사원을 통한 견제 강화’로 요약할 수 있다.

이 후보가 “국정원의 불법도청을 정치관여 금지대상으로 분명히 규정하겠다”고 말한 것은 국정원법을 개정, 불법도청을 법에 금지행위로 명문화해 엄벌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현 국정원법의 정치관여 금지대상 조항에는 불법도청과 관련된 조항이 없다.

‘국정원의 직무를 분명히 규정하겠다’는 것은 국정원법 조항 가운데 편의적인 해석을 낳을 수 있는 애매모호한 조항들을 구체화하겠다는 의미라는 게 한나라당의 설명이다.

또한 이 후보가 “‘국내보안정보’라는 이유로 법이 규정한 직무 이외의 기능을 수행하는 관행을 없애겠다”고 밝힌 것은 대공수사 기능의 확대해석을 막겠다는 뜻으로 파악된다. 간첩수사와 국내정치 사찰을 연계시켜 교묘하게 법을 위반해온 관행을 없애겠다는 뜻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의 개혁은 법개정을 통해 제도적 틀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정원의 막강한 권력을 포기하겠다는 통치권자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상호견제를 강화하겠다는 것도 개혁의 한 축이다. 국회와 감사원을 통한 ‘국정원 감시’가 주된 내용. 이 후보는 국정원에 대한 회계감사와 직무감찰이 모두 필요하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현재는 국정원에 대한 감사는 외부 감사 없이 자체 감사로 끝나기 때문에 불법이 저질러져도 이를 찾아내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다만 직무감찰시 국가기밀의 외부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예외 규정을 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 정보위를 통해 국정원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구상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국회가 국정원의 세부 예산집행 내용을 전혀 심의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어떤 권한이 추가될지 관심거리다. 이 후보의 한 특보는 “도감청 기록을 자동입력시킨 뒤 관련 리스트나 일지를 의무적으로 남기게 하면 차후 감사원과 정보위의 감사를 통해 그 적법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노무현…국내사찰 중지 해외정보 주력▼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국가정보원 개혁 방향의 골자는 국정원의 해외 및 대북파트(정보수집)와 수사파트를 분리해 별도 기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노 후보는 그동안 수시로 국정원의 국정 개입을 비판하면서 개혁을 약속해왔다. 노 후보는 지난달 30일 부산 유세에서 “중앙정보부를 안전기획부로, 또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별 변화가 없었다”고 지적하고 국정원의 국내사찰 업무를 중지시키고 이름도 해외정보처로 개편하겠다고 공약했다. 며 “집권하면 국정원의 국내사찰업무 일체를 중지시킬 것이며 국정원을 국가를 위해 해외정보만을 수집하고 다루는 ‘해외정보처’로 바꾸겠다”고 공약했다.

노 후보는 국정원의 수사파트를 어떻게 개편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안은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측이 노 후보 지원유세 조건으로 제시한 15개 정책조율과제 중 세번째가 바로 국정원 폐지 문제인 만큼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려야할 상황이다. 양측간에는 큰 이견이 별로 없어 조율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정 대표도 이미 “국정원을 폐지하고 대외정보국과 국가수사국을 신설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통합21측은 해외 대북 파트를 대외정보국에서 관할하고, 마약이나 조직 범죄 등을 국가수사국에서 맡도록 하는 안을 마련해 놓고 있다.

노 후보측이 구상중인 개편안도 이와 비슷한 방향이다. 노 후보측은 수사업무를 맡을 기구를 총리실 산하에 두고 국무총리가 감시 감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구상중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처럼 정보업무와 수사업무를 완전 분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 정부 초기에도 이같은 시도가 있었지만 좌절된 바 있다. 이종찬(李鍾贊) 당시 국정원장은 정보와 수사파트의 분리를 염두에 두고 1, 2차장제를 만들었지만 기구 분리까지 밀고가지는 못했다.

노 후보의 한 측근은 “국정원의 개혁에 대해서 노 후보만큼 확고한 의지를 가진 후보는 없을 것”이라며 “국정원 개혁은 도감청 정국 때문에 급조된 공약이 아니라 노 후보가 평소 말해온 소신”이라고 강조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국정원 41년 小史▼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

5·16군사쿠데타 직후인 61년 6월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본떠 국가최고정보기관으로 창설된 중앙정보부는 두 번이나 이름을 바꿔 현재의 국정원이 됐다. 국정원은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정치풍토 조성이라는 명목 아래 대대적인 수술을 받았다.

‘국민의 정부’를 내걸고 출범한 김대중(金大中) 정부는 안기부를 ‘작고 강한’ 순수정보기관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97년 대선 공약에 따라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함께 국가권력기관 이미지를 벗기겠다며 부(部) 명칭을 국정원으로 바꿨다.(99년 1월) 이에 앞서 집권 초기 안기부장에 취임한 이종찬(李鍾贊) 부장은 김 대통령의 지침에 따라 ‘정보는 국력이다’는 원훈(院訓)을 마련하고, 창설 이래 처음으로 ‘직원 윤리헌장’까지 만들기도 했다(98년 6월).

‘공작정치 근절을 위한 안기부의 기능 정상화’라는 대선 공약을 제시하고 출범한 김영삼(金泳三) 정부도 안기부에 대한 ‘문민통제’를 강화한다며 대대적인 개편작업을 벌였다. 94년 1월에는 안기부법을 개정해 국가보안법 7조(불고지죄)와 10조(고무찬양죄)에 대한 수사권을 폐지했다. 이어 같은 해 6월에는 국회에 정보위원회를 신설해 국회가 안기부 예산 심의와 활동 내용을 감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신군부 집권 초기인 81년 1월에는 유신시절 공포정치의 대명사로 인식돼온 ‘중정’을 ‘국가안전기획부’로 명칭을 고쳐 해외와 대북 대공 수사 중심의 국가안보 업무에만 전념할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전두환(全斗煥) 보안사령관이 한때 중정부장서리를 맡았다가 유학성(兪學聖·97년 작고) 부장이 초대 안기부장에 취임해 군 단위까지 파견관이 나가 있던 지방조직을 지부 중심으로 개편했다.

초대 중정부장으로 중정의 기틀을 다진 것은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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