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무엇이 문제인가

  • 입력 2002년 12월 2일 18시 22분


《국가정보원이 정권마다 정치적 시비에 휘말리는 것은 법과 제도보다 집권자의 의지에 따라 운영 방향이 좌우되는 고질적이고도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무조건 충성▼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의지를 받드는 기관이라는 국정원의 ‘자부심’이 결과적으로 국정원의 정치 개입과 불법 공작을 초래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전직 국정원 고위관계자는 “상부의 명령이면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조직문화 때문에 충성심이 법률에 우선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며 “이 때문에 권력자가 마음먹기에 따라 국정원이 언제든지 ‘권력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97년 북풍(北風)사건이나 99년 국정원 언론단 신설 파동도 이런 구조적 문제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99년5월 취임한 천용택(千容宅) 국정원장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강력한 신임과 언론에 대한 권력핵심층의 불만을 바탕으로 언론에 대한 ‘특단 대책’을 기획했었다. 결국 당근과 채찍을 병행한다는 정책 기조 아래 추진됐던 언론단 신설은 계획이 사전에 누출돼 불발됐으나 최고권력층의 ‘심기’를 알아서 맞추려 했던 실례로 꼽힌다.

명지대 허영(許營) 교수는 “조직상 대통령 소속으로 되어 있는 국정원의 결정적 문제는 운영의 문제다”며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와 함께 국회의 통제기능 강화 등 제도적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력 줄서기▼

권력에 대한 충성에의 반대 급부로 승진 및 보직 특혜 등에 익숙해지다 보면 적극적으로 충성 대상을 찾아 나서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권력 교체기마다 국정원 내부 정보 유출이 문제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주장대로 ‘도청자료’가 국정원 내부 문건이라면 이 또한 권력 줄대기의 실상을 보여주는 사례인 셈이다.

김은성(金銀星) 전 국정원 2차장 등 현 정부의 국정원 고위관계자가 권력 실세들에게 줄을 대기 위해 정보를 빼돌려 개인적 보고를 한 것이나 노태우(盧泰愚), 김영삼(金泳三) 정부 말기에 안기부의 관련 정보들이 대선후보진영에 빼돌려졌던 것도 이런 ‘줄서기’의 사례 들이다.

▼예산 불투명▼

국정원은 98년말 180억원 정도의 예산을 국고에 반납한 일이 있다.

국정원 설립 이래 예산 반납은 최초였다. 이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들은 “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대통령비서실 활동지원비 등 과거 정권에서 관례로 썼던 이른바 ‘통치자금’을 쓰지 않다 보니 예산이 남게 됐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국정원 예산은 정보기관의 특성상 영수증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액수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권부에서 이를 가져다 쓰거나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비일비재였지만 실상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현 정부에서도 98년 ‘통치자금’을 반납이후 예산 운용 상황은 알려진 것이 없다.

연세대 김기정(金基正) 교수는 “국정원은 정보처리업무의 특수성으로 인해 자칫 잘못하면 정권 안보 유지에 악용되기 쉽다”며 “정보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산 운용의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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