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核개발계획 파문]정부 北核 알고도 3년간 뭐했나

  • 입력 2002년 10월 21일 18시 52분


《정부가 농축우라늄 방식의 북한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첩보를 99년에 입수, 미국에 제공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동안의 정부 대응방식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의문점들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밝힌 대로 첩보 입수시기가 ‘99년 초’라면 그동안 3년반 가까이 시간이 흐른 셈이다. 정부는 또 그 이후에도 미국과 정보를 공유해가며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추적해 왔다고 밝히고 있지만,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파일’에는 관련 자료가 없었던 게 확실해 보인다.》

▼첩보 수준은▼

99년 입수된 첩보의 수준에 대해 한미 양국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20일 CNN 대담프로에서 ‘99년 첩보’가 “북한이 적극적으로 핵개발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라이스 보좌관이 말한 ‘99년 첩보’가 한국 정부가 제공한 바로 그 첩보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99년 초가 북한 핵개발의 성격과 진전 정도를 가늠하는 분기점이 된 것은 확실해 보인다.

98년 11월 SBS의 보도도 당시의 첩보수준을 짐작해볼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SBS는 그 때 중국 현지에서 세 차례에 걸쳐 “순도 96% 이상의 우라늄, 기폭장치에 쓰이는 오스뮴 등 각종 핵물질이 북한에서 유출돼 중국에서 고가에 밀거래되고 있다”며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과 관련된 정황을 소개했다. 특히 당시 취재기자는 관련자료 일체를 국가정보원에 넘겨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에 대해 “우리측이 입수한 첩보는 북한이 99년 해외에서 농축우라늄 관련 장비를 구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것”이라며 “북한 핵 관련 사항들은 미국측으로부터 공식 통보를 받은 금년 8월 이전까지는 정보로 확인되기 이전의 단순첩보였으며 그렇게 어마어마한 것이 아니었다”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DJ는 몰랐나▼

99년 5월부터 12월까지 국정원장을 지낸 민주당 천용택(千容宅) 의원은 21일 “국방부가 밝힌 그 정도의 첩보라면 분명 나한테도 보고가 됐을 텐데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천 의원은 이어 “첩보라고 해도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면 그 내용을 내가 기억하지 못할 리 없다. 즉각 대통령에게도 보고할 사항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핵문제가 거론된 흔적은 없다. 남북정상회담은 남북의 최고위급 인사가 만난 자리라는 점에서 이 문제도 당연히 거론됐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물론 이 첩보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전달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또 남북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지 않았다면, 이는 정부 내에서 북한핵 첩보를 과소평가해 북측에 거론할 필요성이 없다는 방식으로 정리됐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다른 문제도 아닌 핵문제는 아무리 사소한 첩보라도 핵무기가 갖고 있는 파괴력으로 인해 중대하게 다뤘어야 하는 사안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대책회의 있었나▼

18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이 “제임스 켈리 미국 대통령특사가 우리 정부에 북한 핵개발 사실을 알려준 직후인 15일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핵 논의가 있었느냐고”고 묻자 이준(李俊) 국방부장관은 “논의되지 않았다”라고 답변했다.

그의 언급은 켈리 차관보가 방북(3∼5일)을 마친 뒤 북한의 핵개발 시인 사실을 전한 이후였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가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켈리 차관보의 방북을 전후로 9월 26일, 10월 5일과 10일, 15일에 NSC 상임위원회가 열렸지만 이 문제가 일부 부처의 정보 독점으로 인해 파묻혔다는 의혹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에 대해 외교부 통일부 등의 정부 당국자들은 강하게 부인했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켈리 차관보 방북 이전부터 북한 핵문제를 다뤘다”며 “이 장관이 왜 그렇게 답변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같은 엇갈린 언급으로 인해 NSC 상임위에서 북한 핵문제를 다루기는 했는지, 어느 선으로 다뤘는지를 확인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문제는 99년부터 이같은 첩보가 입수됐다면 적어도 국가의 안보문제를 책임지고 있는 NSC 상임위에서는 초기단계부터 충분히 논의하고 대북정책을 수립했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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