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영이/北-日회담 ‘과거사 반성’은 없고…

  • 입력 2002년 9월 16일 18시 03분


17일 북-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 언론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납치’라는 말이다.

일본 언론은 70, 80년대 북한이 납치했다는 의혹이 있는 일본인 11명의 안부 확인을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날마다 피해자 가족의 호소를 대서특필하고 있다. 반면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언급은 배상금 얘기뿐이다. 이런 보도만 놓고 보면 이번 정상회담은 ‘11명의 인질’을 잡고 있는 납치범과 정의로운 경찰의 ‘인질 협상’과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1991년 시작된 북-일 수교교섭은 일본의 과거청산이 최대 쟁점이었다. 북한측은 식민지배로 인한 피해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해왔다. 일본도 유일하게 전후문제를 매듭짓지 못한 북한과 수교를 추진, 과거사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했다.

그러나 일본인 납치 의혹이 불거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일본은 과거사는 뒷전에 미룬 채 납치 의혹을 내세워 반격을 시작했다. 여기에 북한이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심각한 식량난을 겪게 되자 북한의 배상요구를 마치 ‘납치범의 몸값 요구’처럼 여기고 있는 듯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북한의 자업자득도 없지 않다. 납치 의혹에 이어 미사일 실험이나 괴선박 출현 등으로 일본인들에게 ‘무서운 불량국가’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그렇다고 해도 일본이 과거 한반도에 끼친 고통과 피해를 외면해도 된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일부 신문은 1945년 패전 때 북한에 남겨 놓은 자산이 현재가치로 8조엔이 넘는다며 오히려 일본이 돈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한다. 이는 식민지에 좋은 일을 했다며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일부 극우세력의 비뚤어진 역사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또 배상 문제에서는 1965년 한일수교 때의 경제협력방식을 내세우며 “같은 기준이 아니면 한국이 반발한다”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를 내세운다. 경제적 필요에 의해 ‘배상’이 아닌 ‘경제협력’을 허겁지겁 수용했던 한국과는 달리 북한만큼은 과거사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피가 물보다 진하기 때문일까.

도쿄=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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