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10주년 ④]中유학생 4명중 1명 “한국서 왔어요”

  • 입력 2002년 8월 12일 18시 21분


'한국 유학생 1번지-우다오커우 거리' - 황유성특파원
'한국 유학생 1번지-우다오커우 거리' - 황유성특파원
《“유학생들이 대거 중국으로 몰려드는 것도 수십년 동안 단절됐던 대륙의 흡인력이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문화적 요인이 컸지만 지금은 경제적 요인이 주된 동인이라는 게 다를 뿐이죠.” 칭화(淸華)대 평생교육학원의 민남숙(閔南淑·50·조선족) 원장은 한국 학생들의 중국 유학 열기를 이렇게 진단했다. 한중 수교로 수십년 동안 닫혔던 ‘대륙의 문’이 열린 데다가 90년대 중반 들어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면서 일종의 ‘기회의 땅’이 됐다는 것이다.》

중국 한국총유학생회(회장 박병욱·朴炳旭·29)는 7월을 기준, 유학 및 어학연수 목적으로 중국에 온 한국 유학생은 1만5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수교 직전인 1991년 베이징(北京)의 한국 유학생이 100여명에 불과했던 데 비하면 무려 150배나 늘어난 수다. 이는 중국에 머물고 있는 전체 외국인 유학 및 어학연수생 6만여명의 25%에 해당된다.

베이징 대외경제무역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병덕(李倂悳·28·법학과)씨는 중국 유학열에 대해 비교적 낙관적이었다. “한때 미국으로 대거 유학을 떠났던 것처럼 최근 중국 유학생이 양적으로 급팽창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봅니다.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자원과 유학 자원간에 수급이 자연스럽게 조절되면 유행처럼 중국으로 몰려드는 현상도 자제되리라 봅니다.”

이씨는 “중국의 경제규모가 계속 커지고 있고 한국 기업들의 대(對)중국사업 비중이 늘면서 중국을 아는 인재가 갈수록 필요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초기엔 대부분 어학이나 문학 전공 유학생들이 많았으나 최근엔 경제, 무역, 법학, 전자공학 등 다양한 분야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베이징에 나와 있는 다른 한국인들도 대체로 중국 유학의 필요성엔 공감했다. 일부 문제가 있다고 해도 한중관계가 갈수록 긴밀해지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라도 중국을 알고 이해하는 세대의 육성은 시급한 국가적 과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베이징대를 졸업하고 베이징의 한 무역회사에 다니는 박모씨(25·서울 출신)는 “중국어와 한국말을 할 수 있는데다가 영어까지 되기 때문에 한국의 중고교 친구들보다 훨씬 넓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면서 “당장 취업에 유리하냐 불리하냐를 떠나 길게 보고 가능한 한 많은 후배들이 중국에 왔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의 초봉은 1만5000위안(약 210만원)으로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는 친구들보다 결코 적지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고 그는 강조했다.

물론 유학생이 급증하다 보니 문제점도 없지는 않다. 톈진(天津) 난카이(南開)대 연구생인 장진희(張珍姬·29·중국어교육과)씨는 “한국 유학생들이 급격히 늘면서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모습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 과에 한국 학생들이 수십명씩으로 늘어나면서 어떤 과에서는 중간 및 기말 시험도 ‘한국 학생 따로, 중국 학생 따로’ 식으로 본다”면서 “교수들은 ‘한국 학생들은 중국어만 배워가면 된다’는 부정적 선입견을 갖고 있어서 한국 학생들만을 위한 별도의 단순 암기식 시험문제를 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국 유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대학에선 기숙사를 짓거나 교사를 신축할 경우 대부분의 경비가 한국 유학생들의 학비에서 조달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 유학생들은 언어연수생과 중국 대학에 다니는 본과생, 석사과정 이상을 이수하는 연구생(대학원생) 등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이 중 상대적으로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 학생들이 1년 정도의 단기 언어연수를 거쳐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이다.

베이징대와 칭화대, 베이징어언(語言)문화대 등 한국 학생들과 어학연수생들이 밀집한 우다오커우(五道口) 거리에서 만난 김기영군(19·가명)도 같은 경우였다. 김군은 어학연수를 위해 5월 베이징에 왔다. 그는 “중국어만 배우면 장래가 보장될 것이라는 부모님 생각 때문에 왔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면서 “금요일 오후에 수업이 끝나면 별로 할 일이 없어 한국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다니다 보니 공부도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체의 한 간부는 “한국 유학생들이 어학에 치중하다보니 막상 쓰려면 전문지식이 부족하다”면서 “한국에서 전문지식을 쌓고 중국에 와서 어학연수를 하거나, 아니면 전문분야를 철저히 공부한 후 중국사회에 파고들어야만 기업체가 필요로 하는 자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간부는 “일부 유학생들은 뚜렷한 목표의식이 없이 ‘중국어만 잘하면 취업이 된다’는 식으로 중국에 오기도 한다”면서 “최근엔 한국 기업들도 중국대학 출신을 무조건 채용하기보다는 자사 직원들을 어학연수시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유학생 관리시스템 미비… 조기유학은 신중히▼

중국 베이징(北京)의 H중고교는 조기 유학생을 둔 한국 학부모들에게는 꽤 알려진 학교다. 이 학교는 올해에만 한국 학생 40여명을 입학시켰다. 학비는 기숙사비를 포함해 1년에 1만5200달러. 용돈이나 생활비까지 따지면 2만달러(약 2400만원) 정도가 들 정도로 비싼 학교다.

이 학교는 한국 조기유학생을 위한 어학반을 따로 개설하고 있다. 최근 한국 학생들이 급증하면서 이들에게 중국어 기초과정부터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어학반은 초등 중등 고등반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문제는 이 학교에 유학 온 한국 학생들 대부분이 정규 수업과정에 진입하지 못하고 어학반에만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이 학교 중3년 과정에 입학한 김모군(16)은 “한국 학생들이 계속 들어오다 보니 어학반이 진도가 안 나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고 있다”면서 “어떤 학생은 똑같은 어학 교과서를 10번이나 다시 배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서는 최근 한국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말을 안 듣는 학생을 나무라는 여교사의 머리에 양동이를 덮어씌우고 집단 구타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김군은 “한국 학생들이 많아지다 보니 나이도 15세에서 19세까지 다양하다”면서 “중국의 학교는 교사의 체벌이 용인되는 등 한국보다 수업 분위기가 엄격해 한국에서 소위 ‘귀하게만’ 자란 학생들은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연령층이 다양해지다 보니까 기숙사 생활이 끝나는 금요일 오후면 한국 학생들끼리 몰려다니는 경우도 많다는 게 현지 교민들의 얘기다. 어린 학생들은 나이 많은 형들이 선동하면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공부는 제쳐놓고 함께 어울리게 된다는 것. 이 과정에서 담배와 술도 배우게 되고 심지어 사우나에서 잠을 자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학생도 있다는 것.

칭화(淸華)대 평생교육학원 민남숙(閔南淑) 원장은 “유학은 의무교육이 아니다”면서 “특히 중국은 미국이나 유럽처럼 학교에서 학생들을 돌봐주는 시스템이 안 돼 있기 때문에 믿음직한 보호자가 없을 경우 조기유학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유학생회장 박병욱씨 인터뷰▼

“중국 유학에는 뚜렷한 목표의식이 중요합니다.”

중국 한국총유학생회장 박병욱(朴炳旭·베이징 영화학원 영화감독과 석사과정·사진)씨는 “유학의 목표는 중국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 중국을 배우는 데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다니는 영화학원은 유명한 장이머우(張藝謨) 감독과 영화배우 궁리(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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