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승모/청와대의 책임 불감증

  • 입력 2002년 8월 1일 18시 56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임명한 국무위원에 대해 국회가 비토권을 행사한 것은 두 차례다. 지난해 9월3일 임동원(林東源) 통일부장관 해임건의안 가결이 첫번째이고, 31일 장상(張裳) 국무총리 지명자 임명동의안 부결이 두 번째다.

지난해 8·15평양통일대축전 방북단의 돌출행동 파문과 이로 인한 남한 내의 이념갈등 문제와 관련해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임동원 장관 해임안을 가결시켰을 때 청와대는 “이번 국회의 결정은 남북 화해협력정책을 무력화하고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로, 국민과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박준영·朴晙瑩·당시 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김 대통령은 해임안이 가결된 임 장관을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보로 임명해 더 가까운 곳으로 불러들였다.

장 지명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직후 김 대통령은 “능력과 식견을 갖춘 지도자의 임명 동의가 통과되지 못한 데 대해 애석함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통령은 1일 국무회의에서 “우리에 대한 평가는 역사에서 나올 것이다”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청와대는 “통절(慟絶)한 심정”이라는 공식논평까지 냈다. ‘너무 슬퍼 기절할 지경’이라는 얘기였다. 국회의 원의(院意)를 일고의 가치도 없는, 잘못돼도 아주 잘못된 결정임을 강조한 반응이라는 점에서 임 장관 해임안 가결 때나 이번 장 지명자 부결 때나 거의 판에 박은 듯 빼닮았다.

국회의원들에 대한 세인의 시선이 그리 곱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헌법상 엄연히 보장된 제도에 따라 국회가 내린 결정에 대해 청와대가 이런 반응을 보여도 좋으냐는 별개의 문제다. 장 지명자의 인사청문회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동의안 부결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 민의의 흐름과 국회의 결정을 겸허하게 헤아리는 자세를 보일 수는 없는 것일까. 하긴 그런 정도 염량(炎凉)이 있었다면 애당초 이런 상황이 초래되지 않았을 것이지만….

윤승모기자 정치부 ysm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