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금강산 상봉]반세기만에 받은 생일상 '울음바다'

  • 입력 2002년 4월 29일 18시 26분


“아버지 드세요”
“아버지 드세요”
4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 이틀째인 29일 남측 방문단 99명은 개별 상봉 2시간, 공동 오찬 2시간, 구룡연 참관 3시간 등 총 7시간에 걸쳐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만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좀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기다려 봐야지 뭐.”

함께 방북한 이산가족들이 상봉의 기쁨을 누리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원일(金源一)씨의 마음은 착잡해졌다. 장편소설 ‘노을’의 작가이자 이산가족이기도 한 김씨는 방문단의 지원인원 자격으로 금강산을 찾았다.

물론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방북한 것이지만 과거 상봉시 일부 지원인원이 가족을 만난 전례를 생각해 실낱같은 기대를 걸었으나 무산되자 허탈하다는 표정이었다.

○…남한의 이부자씨(62)는 북한의 언니 신호씨(66)와 함께 이산가족 상봉 이틀 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 어병순씨(93)의 영정을 모시고 추도식을 가지던 중 남측 방북단의 이세웅(李世雄) 단장이 대한적십자사 서영훈(徐英勳) 총재의 부의금 봉투를 전달하려다 북측 가족들이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어색해지기도 했다.

남측 관계자가 “남한에서는 상(喪)을 당했을 때 이렇게 한다”며 거들었으나 신호씨의 자녀들은 “우리는 돈 없이도 산다. 우리 식대로 산다”며 끝내 거절했다.

○…남측 가족이 만난 북측 가족들은 이번에도 ‘장군님(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지칭)의 은혜’를 강조했다.

남한의 제수 차홍준씨와 조카들은 남한의 시아주버니 임경수씨(86)가 6·25전쟁 때 월북한 동생 소식을 묻자 “장군님 배려로 잘 지내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했다.

셋째조카 옥화씨는 “신의주에 큰물(홍수) 피해가 났지만 장군님의 배려로 방 다섯칸짜리 2층 아파트에 살 수 있게 됐다”며 “큰아버지도 남쪽에 내려가면 장군님을 고향사람에게 선전해달라”고 말했다.

○…개별 상봉에 이어 열린 가족 동석 오찬에서 남한의 최구배씨(68)는 북한의 여동생 인순씨가 차려준 생일상을 받았다.

최씨는 “50년 만에 여동생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복에 겨운데 이렇게 생일상까지 받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내딸-동생딸 이름이 같을줄이야"▼

“형님 딸과 내 딸 명숙이의 이름이 똑같네….”

남한의 강일창씨(77)는 29일 개별상봉에서 고희 잔치 때 찍은 가족사진을 펼쳐놓고 50여년 만에 만난 북한의 동생들에게 자녀들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강씨가 딸을 가리키면서 “얘가 명숙이”라고 말하는 순간 동생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동생 은창씨(55)는 “우리 애도 명숙인데…”라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사촌의 이름은 다르게 짓는 것이 상식이지만, 기나긴 분단의 세월이 사촌들의 이름을 똑같게 만든 것이었다.

금숙(60) 금분씨(56) 등 여동생들은 다짜고짜 “미국놈이 갈라놓으니까 딸 이름이 같잖아”라고 말하며 가족사의 한(恨)을 미국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황해도 연백군이 고향인 강씨는 6·25전쟁 당시 의용군 입대를 피하기 위해 예성강 나루터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화도 교동으로 나온 뒤 가족들과 헤어졌다.

강씨는 피란 갈 때 자신을 나루터까지 바래다주었던 어머니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오열했다. 강씨는 “어머니는 행복하게 사셨어요”라며 위로하는 동생들의 손을 어루만지며 “그래 그래, 그러셨을 거야”라며 흐느낌을 멈추지 못했다.

▼50년만에 큰딸에게 결혼축하반지▼

“자, 이것 받아라.”

29일 오전 큰딸 김순실씨(63)가 묵고 있는 금강산여관 11층 11호를 찾아간 황선옥씨(79·부산 수영구)는 들고 온 보따리를 풀어 금반지 하나를 꺼내 놓았다. 50여년 전 헤어진 딸의 결혼을 뒤늦게나마 축하하려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끼워주는 반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씨는 “다 지나서 무슨 반지예요”라고 말하면서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 역시 딸을 끌어안고 울었다. 어머니 황씨는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사위에게 주려고 한복까지 준비했지만, 사위는 이미 2년 전에 저 세상으로 떠났다.

전날 단체상봉에서 북한의 형수 김문룡씨(66)를 만난 남한의 시동생 변정의씨(61)는 형님이 이미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울먹이면서 품속에서 금비녀 하나를 꺼냈다.

“이제 우리 집안의 대는 형수님이 잇게 된다는 증표입니다. 어머니가 형을 만나면 직접 전달하려고 고이고이 간직해온 물건입니다.”

시동생의 설명에 형수는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금반지와 금비녀는 한국의 여인네들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선물이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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