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금강산 상봉]"이틀만 더 사셨어도"

  • 입력 2002년 4월 28일 18시 13분


“어머니는 어디 가시고…”
“어머니는 어디 가시고…”
“어머닌 왜 안 보여….”

남에서 올라간 이부자(李富子·61)씨는 어머니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북의 언니 신호씨(66)를 부둥켜안으며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이들 자매의 어머니 어병순씨(93)는 이번 상봉의 방문단으로 선정됐으나 신호씨와의 상봉을 불과 이틀 앞둔 26일 세상을 떠났다.

“언니, 어머니께서 이틀 전에 돌아가셨어요. 50여년을 기다리셨는데….”

어머니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신호씨는 부자씨를 부둥켜 끌어안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머니 생전에 따뜻한 밥 한 그릇도 제대로 차려드리지 못한 아쉬움에 한참을 울먹이던 신호씨는 정신을 가다듬고 “너라도 왔으니 됐다. 그만 울어라”며 동생을 다독거렸다.

신호씨가 어머니와 생이별을 한 것은 1950년 9월28일 서울수복 직후. 당시 서울 한양여중 3학년이던 신호씨는 잠시 학교에 다녀온다고 나갔다가 북한군에 끌려갔다.

˝세월이 원망스러워요˝

어머니는 태어날 때부터 허약해 목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젖도 잘 빨지 못했던 둘째딸 신호씨를 언제나 안쓰럽게 생각했지만 50년이 넘도록 딸이 살아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호적에 이름을 남겨두었다. 또 신호씨 생일인 음력 7월7일에는 해마다 주인 없는 밥상을 차려놓고 한숨을 내쉬곤 했다.

지난해 10월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위한 남북 생사확인 작업에서 신호씨가 북쪽에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어머니는 매일 달력에 표시를 하고 “어떤 선물을 가져가야 하느냐”고 물으면서 딸을 만나는 순간만을 손꼽아왔다.

언니를 만나는 게 어머니를 위하는 길이라는 가족의 권유에 빈소도 지키지 못하고 방북길에 올랐던 부자씨는 “이럴 줄 알았으면 어머니의 유언이라도 받아두는 건데…”라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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