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러-주일 대사 전격교체 뒷말무성

  • 입력 2001년 12월 30일 18시 19분


▼“李총재에 호의 보복”▼

한나라당과 정부 여당 측은 30일 이재춘(李在春) 주러시아 대사의 경질 배경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한나라당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성명에서 “공관장 인사철도 아닌 데다 이 대사가 통상적 임기인 3년 중 2년도 채우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인사는 아니다”며 “지난달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방러 당시 의전을 트집잡은 보복이란 의구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총재에 대한 이 대사의 의전은 사전에 본국 정부의 허락을 얻은 것이었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 수행도 주말이었던 만큼 문제될 것이 없었다”며 이 대사 경질 철회를 요구했다.

한나라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청와대가 이 대사 경질을 통해 ‘공직자 줄서기’에 대한 엄중 경고를 할 것이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총재도 이 대사의 경질설을 보고 받고 상당한 불쾌감을 표시했다는 후문이다. 또 권철현(權哲賢) 기획위원장은 29일 한승수(韓昇洙)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 대사 경질은 보복성 인사”라고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4강외교 마무리 차원에서 러시아에는 남북 관계에 정통한 직업외교관을 기용하려 했던 예정된 인사로, 이 총재의 러시아 방문 이전에 이미 결정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이낙연(李洛淵) 대변인도 “정부는 그 뒤로도 이 총재 측으로부터 오해를 받을까봐 걱정했을 정도였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정태익(鄭泰翼) 주러시아 대사 내정자는 92년 남북핵통제 공동위원으로 북한의 사찰문제를 다뤘고 95년엔 이집트 총영사로 있던 중 한-이집트 수교를 이끌어낸 직업외교관으로 9월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으로 기용됐었다.

<정연욱기자>jyw11@donga.com

▼“자리나눠주기 의혹”▼

대사 임기가 보통 3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상룡(崔相龍) 주일대사를 2년도 채 안돼 교체하는 배경이 석연치 않다.

최 대사가 무능하다고 판단했다면 ‘경질’이라고 밝혀야 맞다. 그렇지 않다면 정권 말기의 ‘자리 나눠 주기 인사’라는 눈총을 받기 쉽다. 내년 초 후임으로 조세형(趙世衡) 민주당 상임고문이 부임하더라도 1년짜리 단명대사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 대사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대일외교의 브레인이자 일본통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역사교과서 왜곡 △재일동포 참정권 △재일동포 통합은행 문제라는 ‘삼각파도’에 내상을 입었다. 왜곡역사교과서는 검정을 통과했고 재일동포 참정권도 언제 일본 국회를 통과할지 요원하다. 자신감을 보여온 재일동포 통합은행 설립도 무산됐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를 전부 최 대사가 책임을 져야할 사안은 아니다. 세 가지 사안 모두가 일본 정부나 국회가 결정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대일교섭 능력에 실망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책임을 물어 ‘경질’한다고 밝히는 것이 일본 정부에도 떳떳하다. 대사관 직원들도 “교체는 의외”라는 반응들이다. 일본의 NHK는 “월드컵을 앞두고 한일 관계를 더욱 원활히 하기 위해 거물정치인을 보내는 것 같다”고 풀이하면서도 “주일 한국대사를 2년도 안돼 교대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최 대사가 부임한 지 1년이 조금 지나면서부터 대사관 주변에는 정치인 K, S씨 등이 김대중 정권이 끝나기 전에 주일대사를 하기 위해 뛰고 있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낙점은 다른 사람이 받았지만 최 대사는 결국 도중하차했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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